어머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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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동생 남편은 타지 사람이다. 자란 곳을 떠나 스무 해 넘게 제주 사람들 틈에서 살고 있으니 여기가 그에겐 또 다른 고향인 셈이다. 동생에게 듣길 제부가 가끔 우쭐거리며 하는 말이, 자기는 웬만한 제주어는 거의 알아듣는다며 호언한다고 한다.

한데 그 자부심에 금 가는 일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멋 낸다며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던 동생이 삐끗하여 넘어졌다. 멀쩡히 걷다 넘어지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퇴근하자마자 남편에게 하소연하듯 나 푸더 먹언하고 말했다 한다. 그러면 다친 곳이 없냐며 호들갑을 떨 텐데 의외의 반응에 배꼽을 잡았다는 것이다. 되물어 오길 혼자 뭘 먹었다고?”란다.

제부는 이제 알았을 게다. ‘푸더 먹다넘어지다라는 뜻임을. 아울러 앞으로 생경하게 들리는 제주어에 더 귀를 쫑긋하지 않을까 싶다. 샘 창아리 없다라는 말은 아는지 모르겠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도 그렇지만 자식들에게 살갑게 말하는 분이 아니었다. 자식을 향한 속정이야 없을까마는 겉으로 내보이질 않아 칭찬보다 나무람이 잦았다.

일곱이나 되는 형제자매 속에서 더 먹고 싶고, 더 놀고 싶고, 더 갖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쟁 앞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에두르지 않은 어머니의 말이었다. “샘 창아리 어시(없이).” 다른 사람 헤아리지 않고 혼자 욕심을 부린다며 따끔하게 톡 쏘았다. 염치없음을 탓했다.

어린 나이에도 이 투박한 표현이 싫었다. 자주 들어 내성이 생길 만도한데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싸했다. 이런저런 꾸짖는 다른 말들은 흘리면 그만이지만 샘 창아리 없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손에 쥔 욕심을 내려놓아야 질퍽한 말의 굴레에서 풀려났다.

말은 생각을 담는다고 했던가.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에서 말수가 적은 아버지를 대신한, 자식들이 우애 좋기를 바란 어머니의 매운 회초리였음을. 뭐든 자리에 없는 식구 몫까지 챙기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농사꾼에게 여럿 되는 자식은 모여든 일손인 동시에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였으리라. 언젠가 아들만 셋을 키운 어떤 분이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쌀독이 비는 낌새에 겁이 났다고 했다. 그 얘기에 일곱 자식을 먹어야 했던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오일장 날 아침, 콩이며 녹두며 참깨를 보자기 위에 놓고 질끈 동여매던 어머니. 고팡()의 항아리들이 하나씩 밑바닥이 보일 때마다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그 마음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운동화 산다고 따라간 어느 장날, 신발 가게 앞에서 손으로 가리킨 바닥에 쌓인 신발 더미를 모른 체하며, 진열된 운동화를 사겠다고 고집부리지 말걸. 샘 창아리 없던 나였다.

오래된 기억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듯 듣고 자란 말도 내게 그러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하나둘 품에서 떠나자 어머니는 더이상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이도 모전여전인지 누군가의 이기주의적 행태가 눈에 보일 적마다 간간이 혼잣말처럼 튀어나왔다.

가령 이럴 때다. 일본이 2023년부터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바다로 흘러 보내겠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발표가 가당키나 한가. 주변국들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치도 없는 안하무인 격인 심보다. 그래서 내뱉는다. “, 샘 창아리 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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