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에 맞선 히드라들의 민중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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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영웅중심주의에 너무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제우스 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내심 응원하면서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에는 근거없는 반감을 품어왔던 것은 아닐까.

'히드라(Hydra)'. 헤라 여신이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12가지 고난 중 두번째 고난에 등장했던 괴물.

머리가 여러 개인 히드라는 머리를 잘라도 금방 다시 돋아났지만 헤라클레스는 머리를 자른 자리를 불로 지져 다시는 새 머리가 돋아나지 못하게했고, 히드라의 독을 화살촉에 묻혀 다음 고난들을 해결해나간다.

미국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와 독일 노동사학자 마커스 레디커는 공동으로 쓴 역작 '히드라'(갈무리 펴냄)에서 히드라를 헤라클레스라는 제국주의에 맞선 제3세계의 민중으로 대입했다.

17세기와 18세기 북서유럽의 상인들, 제조업자들, 식민농장경영자들, 관리들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새로운 경제를 구축했다. 그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로부터 노동자들을 모아서 금괴, 모피, 생선, 담배, 설탕 및 공산품들을 생산하고 수송했다.

자신들의 일을 '헤라클레스의 역사(役事)'라고 비유했던 이 시기 유럽인들은 여러 머리 히드라에서 헤라클레스로 상징되는 중앙집권과 제국주의를 가로막는 무질서와 저항의 상징을 발견했다. 이런 시각은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를 이끌던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대할 때도 적용됐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 추방된 범죄자들, 하인들, 종교적 급진주의자들, 해적들, 도시노동자들, 병사들, 선원들,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히드라의 다양하고도 항상 변하는 머리들이라고 불렀다.

계속 실패하고 죽임을 당해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히드라는 지배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선원들ㆍ노예들ㆍ평민들과 같은 다중에게 히드라는 끝나지 않는 반란의 역사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책은 식민지 대륙을 찾기 위해 떠난 배 '씨벤처호'에서 일어난 선원들의 반란과 탈주, 프랜시스 베이컨이 괴물이라고 지칭했던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의 연합', 흑인 노예들의 반란과 진보적인 침례교도들, 해적들이 세운 민주적 해양국가, 아프리카, 아일랜드, 자메이카, 니카라과 등에서 일어난 모반들, 미국 독립 선언에서 실질적인 주역을 맡았던 잡색 군대 등 지배자들이 쓴 역사에 가려 있었던 민중의 역사를 전한다.

정남영ㆍ손지태옮김. 632쪽. 3만원.(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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