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공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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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오월은 꽃 중의 꽃, 장미의 달이다. 진홍 장미가 넝쿨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길을 걷고 있노라면 나 자신도 장미 왕관을 쓴 듯 우쭐해진다. 그 어떤 꽃이 장미의 모양과 색과 향을 넘보랴. 그래서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인들도 다투어 아름다운 시어로 오월을 찬미한다. 이해인은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이라 했다. 노천명은 청자 빛 하늘이 육모정 그린 듯이 곱다.”고 읊었다. 그런가 하면 괴테는 찬란하여라 자연의 빛, 하늘은 빛난다. 들은 웃는다.”5월의 자연을 노래했다. 싱그럽게 자라난 푸나무 잎들과 그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봄 햇살. 이름 모를 가녀린 꽃들조차도 제 나름의 본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가정의 달이어선지 코로나 확산이란 주의보에도 들녘과 공원에는 가족끼리 손잡고 봄 풍치를 즐기는 이들이 여럿 눈에 띈다. 손자 손녀의 가냘픈 손에 이끌려 풀밭을 거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허허한 잇몸을 드러낸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우리의 행복이란 시어들이 어른거린다. “네가 좋으면 내 어깨에 흥이 돋고,네가 신나면 내 허리에 춤이 핀다.”

코로나로 자유를 빼앗긴 지 일 년 반이다. 내 인생의 아쉬운 공백기다. 어릴 때는 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학창 시절에는 공부와 씨름하느라 힘들었다. 성인이 되어 배우자를 만나고 부부가 되어 아이 낳아 키우며 바쁜 청춘 시절도 탈 없이 보냈다. 지금까지 자식들의 부모 역할을 하고, 때로는 부모의 자식 역할도 하며 형제자매 친척 친구로서의 역할도 감당했다.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인생 역할이었다. 오월이면 가족과 함께 하는 행사도 빠짐없이 치러왔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이 모든 걸 가로막고 있다. 친척은 고사하고 떨어져 사는 자식들과 만나는 것조차도 조마조마하다. 특히 이곳 제주도의 코로나 확산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n차 감염 확산, 무증상 감염, 백신 접종 늑장 등. 듣기에도 거북한 뉴스들을 매일 같이 쏟아낸다. 듣는 이들의 기분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쉬지 않고 세뇌하듯 읊어댄다. 꽃 피는 오월임에도 맘 놓고 웃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내 뜻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다.

가족은 사랑으로 얽혀 살아야 할 가장 소중한 사이다. 힘든 세상 살아가면서 가장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혈연관계다. 식구처럼 지내는 다정한 친구와 친지들 역시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며 사랑과 정을 쌓아가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수다 떨며 웃어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코로나가 이런 가족과 친지 사이를 무참히 갈라놓고 있다. 이러다간 가족이나 친지들을 영영 외면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존재 이유는 기쁠 때나 어려울 때 함께 어울리는 데 있다. 서로 소원하게 지내다 보면 사랑과 우정도 따라서 소원해지는 게 삶의 이치다. 그들과 맘 놓고 만나 사랑과 우정을 쌓으며 행복을 공유하게 될 그 날을 손 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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