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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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1938년 노벨문학상은 펄 벅이라는 여성 작가에게 주어졌다.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살았던 중국을 ‘대지’라는 소설로 옮겨 써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펄 벅의 작품 중에 ‘본국송환’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 중국 청년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청년은 슈퍼마켓을 하는 집에 하숙을 했는데, 그 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다. 부자집 딸은 호기심이 많았는지 중국 청년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무 이야기나 중얼거리면서 예쁜 여자를 쫓아다니는 프랑스 남자에 비하면 중국 청년은 점잖아 보였다. 부모가 말리고 슈퍼마켓의 프랑스 청년이 쫓아다니는데도, 하숙집 딸은 중국 유학생만 좋아했다. 유학을 마친 청년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는 결국 그의 아내가 되어 중국으로 함께 가고 말았다.

중국에 가서 한동안은 괜찮았다.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면서 그런대로 즐겁게 살았다. 그런데 남편은 점잖기만 했다. 친구들끼리 밤새 이야기하고 마작을 하고 술을 마시다가 새벽이 되면 점잖게 헤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프랑스 여인은 후회하기 시작했고 고향을 생각하며 울기도 했다. 그때 슈퍼마켓에서 일하던 프랑스 남자와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여인은 남편에게 소신을 밝혔다. “당신과는 도저히 더는 못 살겠소.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남편은 점잖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당장 프랑스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관 직원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면서 프랑스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대사관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같은 여인들이 가끔 대사관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프랑스 정부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여비를 제공해왔습니다. 그런데 본국송환 여비는 오직 한번만 제공됩니다.” 다시 돌아오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던 셈이다.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서 여인은 슈퍼마켓의 그 청년만을 생각했다. 프랑스 기질이 넘치는 그 남자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날씬한 체격에 유머 넘치던 그 청년을 생각하면서 프랑스로 향한 것이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와서 슈퍼마켓에 들어섰을 때, 그 청년이 남아 있기는 했는데 옛날의 그 사람은 아니었다. 우람한 허리에다가 바지가 찢어질 듯한 허벅지에다가 텁수룩한 수염에…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뭔가를 닮아 있었다. 순간 여인은 중국의 남편을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점잖았고 표현은 안했지만 나를 사랑했다. 더 늦기 전에 중국으로 돌아가야지.” 생각하는 순간 대사관 직원의 말이 귓전을 울려왔다. “본국송환 여비는 한번만 제공됩니다.”

펄 벅이 송환되고 싶었던 중국은 전통과 신비와 고난을 안고 살았던 중국이다. 그런데 그런 중국과 그런 중국 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이 시대의 중국 남자는 갑자기 생긴 돈과 힘을 가지고 세상을 장악하려다가 온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듯한 이미지이다.

펄 벅의 아버지의 방식으로 회개하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중국 남자가 돌아갈 곳은 없어 보인다. 그 남자를 닮으려고 애쓰던 이 나라의 남자들은 외면당하는 그것까지도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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