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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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푸르른 나뭇잎이 더욱 짙어진 유월이다. 장마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 그런지 한낮은 후텁지근하니 덥다. 점점 계절이 앞당겨지는 듯 마당에 있는 매실도 예년보다 앞당겨 수확을 해야만 했고 봉선화와 분꽃도 피고 있다. 집 안은 아직도 봄이지만 밖은 여름이 왔음을 꽃들이 알려 준다.

유월은 돌아보면 잊을 수 없는 달이기도 하다. 배고픈 시절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보리를 장만하려고 눈코 틀 새 없이 바빴던 시절의 이야기를 할머니들은 곧잘 하신다. 나도 어린 시절이지만 먼 올레에서 보리까끄라기를 태우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모여들어 보리이삭이 혹시 있지 않나 나뭇가지로 휘저어가며 주워 먹기도 하고 간혹 감자를 구워 먹기도 했던 기분 좋은 기억과 함께 어른들도 왠지 기분이 좋아보였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한다. 아마도 보리 장만이 무사히 끝났음이 얼굴에 나타난 것을 어린 아이였지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그을린 냄새가 좋고 그리운 고향 냄새 같다.

유월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많은 아픈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이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던 달이기도 하다. 그들의 희생,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아들딸들이었을 그들을 기억하며 되새김을 해야 하는 달이다.

학창시절 학교 정문은 굳게 잠겨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무장된 군인들만이 차지가 되고 거리는 온통 최루가스가 자욱한 암울한 시대를 보냈다. 많은 학생들이 온 몸으로 그 암울함을 걷어내고자 외치며 거리로 달려 나왔던 그 외침이 끝내는 변화의 물코를 트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그 변화의 물은 흐르고 있는데 다시 막혀 물이 썩지 않도록 물길을 내는 몫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 아버지는 학도병으로 6·25에 참전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다리에 시커먼 자국과 뒷목이 패인 것을 보면서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을 때마다 말꼬리를 돌리셨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나중에 어머님이 총상의 흔적이라고 해서야 알게 되었다. 인천 갔다가 우연찮게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 들르게 되었는데 당시 전투 장면 사진을 보면서 저들 중에 우리 아버지도 어딘가에서 사투를 벌리고 계시구나 생각하니 절절이 마음을 후비며 그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유공자 신청도 마다하시며 살아남은 것으로 족하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들이 이 땅에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지키다 생명을 묻은 자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왔음을 기억하며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돌아보는 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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