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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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윤 수필가

올레길을 걷는다. 길을 가다 많은 돌담을 만난다. 밭을 일구다 나온 돌들을 밭 주변에 쌓아 두면 자연스레 밭담이 된다.

집터를 만들다 돌이 나오면 울담이 되고 길을 닦다 나온 돌들은 올레 담이 된다.

돌담들은 어찌 보면 하나하나 연결된 돌탑들이다. 쌓은 이의 소망과 비원이 담겨 있다. 돌담들은 우리 삶이 그렇듯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비록 아무렇게나 쌓은 듯싶어도 돌탑을 쌓을 때의 정성이 돌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돌탑 쌓기의 기본은 무거운 돌은 아래로 보다 가볍고 작은 돌들은 위로 쌓는다는 것이다. 크고 무거운 돌들이 윗돌들을 떠받들고 윗돌들은 아랫돌을 딛고 높고 길게 쌓여 간다. 보다 작은 돌들은 돌과 돌의 간격을 메우면서 굄돌로 쓰인다. 이렇게 해서 별 도구 없이 손과 정성만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제주 돌담은 돌들을 많이 깎거나 다듬지 않고 생긴 대로 쌓아 올린 탓에 아귀가 잘 안 맞아 삐뚤빼뚤하다. 심지어 서있는 돌도 있고 거꾸로 박힌 돌도 있다. 하지만 돌 하나에 또 하나의 돌을 얹을 때 무게 중심만은 엄격히 수직이 돼야 한다. 다만 돌담들은 서로 이어져야 한다는 숙명 때문에 어느 정도 수평의 논리도 적용된다. 돌들은 위아래로 견디면서 옆으로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돌담들을 쌓는 데 보면 벽돌담을 쌓듯 실로 수평을 치고 돌을 쌓거나 애초에 철골로 틀을 만들어 놓고 쌓는다. 그러나 구불구불한 집 담이나 올레담들은 마음의 수평으로 돌을 쌓는다. 돌을 고르고 식별하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눈대중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멀리 보고 널리 고르는 평평한 마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돌담들은 어깨동무한 돌탑들이다. 낳은 자리에서 서로 지켜주는 가족들이거나 친구들이다. 친구가 친구를 통해, 이웃이 또 이웃을 통해 멀리 있는 돌들까지 서로 호응하며 힘을 보태기도 하고 나누기도 한다.

바람이 불 때면 서로 팔을 겯고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사람마다 왜 틈이 없고 빈자리가 없겠는가마는 그 틈새와 빈구석이 오랜 관계를 유지시키듯이 맞붙은 듯 어긋난 돌들의 틈새가 오히려 바람과 세월의 힘을 견디는 유연한 장력이 된다.

돌담을 쌓을 만한 능력도 없고 기회도 없지만 가끔은 무너진 돌담을 고쳐 쌓아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제법 익숙한 돌챙이처럼 돌 모양을 가늠하며 이리저리 꿰맞춰 본다. 문제는 돌의 무게고 나의 근력이다. 제주 돌들은 웬만하면 마을의 들돌 크기 이상이어서 들어 올리기조차 힘에 겹다.

너무 무거워 순간적으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돌 틈에 손가락이 끼기 일쑤다. 특히 새끼손가락이라도 낄라치면 눈에서는 마른벼락이 치고 이마에서는 붉은 피땀이 흐른다. 이렇게 해서 흑룡은 만 리나 달아나다 보다.

아내가 빌려 쓰는 공방 돌담 여기저기에 송악이 자란다. 땅속에서부터 올라온 굵은 줄기는 돌 위에 부조된 것처럼 밀착돼 담 등을 타고 길게 뻗어나간다. 송악을 볼 때마다 돌담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그 모습이 미덥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어느 날 이유 없이 돌담이 쓰러져 있는 곳을 들여다보니 송악 덩굴이 함께 뒹굴고 있었다. 송악은 모든 자연의 힘이 그러하듯이 돌담을 굳건히 지켜주기도 하고 쓰러뜨리기도 하였다. 제주 돌담은 어쩌면 자연에 대해서는 한갓 방관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돌담길을 에돌아간다. 나와 돌담은 함께 바람과 햇볕에 마른다. 황태 덕장처럼 꾸들꾸들 마른다. 소신공양의 등신불처럼 새까맣게 마른다. 오래된 풍장처럼 뼈로 마르고 돌이킬 수 없는 역사처럼 아픔으로 마른다. 그래도 그 긴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두렵고도 황홀한 호기심의 눈은 살아있다. 돌담의 틈새로 푸른 바다 빛이 넘나든다. 돌담 너머로 샛노란 유채꽃의 영혼이 넘실댄다. 나는 오늘도 바람을 따라 머나먼 환해장성의 돌담길을 굽이굽이 이어간다. 흰 구름 벗으로 삼아 아득한 산담길을 곱이곱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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