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을 훔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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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산업화 문턱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궁핍 속에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 박수근. 그를 우리는 기억한다.

단조롭지만 소박한 서민 세계를 독창적 화법(畵法)으로 그려낸 화가다. <절구질하는 여인〉, <시장의 사람들〉, <빨래터〉…. 평면적 질감과 어둔 색채를 통해 암울한 시대·사회를 자신의 내면으로 승화시켰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빨래터〉는 김환기의 <무제〉가 경매에 나오기 전까지 사상 최고액(2007. 45억2000만 원)을 기록했다.

강원도의 부유한 집안 태생이나, 갑자기 가세가 기울고 어머니를 여의는 불운 속에 심한 방황과 고난의 삶을 운명으로 끌어안았던 그다.

어머니 생전, 오랜만에 찾은 고향 빨래터에서 한 여인을 마주하고 나서 편지에 진실을 써 내린다. 구구절절, 한 남자의 순정(純正)한 고백이다.

“일전에 당신이 우리 어머니와 빨래하러 같이 가셨을 때, 어머니 점심을 가져간다는 구실로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보고 아내로 맞이하기로 마음을 결정하였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돼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내에게 쓴 첫 편지)

아내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가난한 박 화백의 형편을 잘 알던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지만, 진실한 마음을 나눈 두 남녀는 갖은 난관을 겪으면서 시나브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춘천의 부잣집 자제와 결혼시킨다고 선언하고 호되게 다그쳤고, 이에 박 화백은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참으로 미안합니다. 나로 인해 아버지의 매를 맞는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말로 사과를 드려야 할까요? 그러나 당신 못잖게 나의 마음도 몹시 아팠습니다. 실연당해 자살한다든지 병이 난다든지 하는 것을 보며 못난 사람이라고 흉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내가 당하고 보니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춘천으로 약혼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참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의지가 강하다고 자부했었는데, 이처럼 약할 줄이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내에게 쓴 두 번째 편지)

결국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한 부부. 혹독한 생활고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가정을 꾸렸다. 전쟁의 광기에 빠져든 일본의 수탈이 날로 거세던 어느 날, 뙤약볕 아래 어린것을 업고 밭일하는 아내 앞에 불쑥 박 화백이 다가가 양산을 펼쳤단다. 입에 풀칠이 버거운 형편에 양산이라니. 어디서 난 것이냐 묻는 물음에 머뭇거리다 한 말, “당신이 아들 업고 뜨거운 볕 아래 일하는 게 하도 가슴 아파서 그만…. 돈은 없고 어느 상점에서 훔쳐 온 것이라오.”

아내가 설득해 다음 날 양산을 상점에다 돌려주었지만, 그 마음만은 그녀의 가슴속에 오롯이 남았으리라. 화백 사후, 아내 김복순 여사가 회고했다. “내게 베푼 그 뜨거운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한없이 뜨거운 사랑!”

박 화백의 그림엔 예술가의 순박한 사랑과 서민의 애틋한 숨결이 시골 빨래터의 물로 소리 내어 흐른다. 그들 사랑이야말로 진정 순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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