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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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칼럼니스트

일 년 넘게 코로나19 팬데믹 전염병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국내의 각종 언론매체 등도 매일 ‘코로나신보’이기나 한 것처럼 매일 빼놓지 않고 보도하고 있다. 이제 나이어린 조카와 함께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할아버지도 안쓰럽다. 일 년을 넘기고 있으니 그렇다. 어른도 일상생활에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적 대 유행인 전염병을 팬데믹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로 보는데, 끝 간 데가 언제일지 두렵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위험상태에 따라 세계적으로 전염병의 상태를 의미하는 말을 공개했다.

팬데믹이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경계단계보다 최고위험등급에 해당되는 용어다.

‘사노라면’ 각종 사고가 살아가는 일에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을 갖는 사람은 살고, 절망을 갖는 사람은 늘 절망을 갖고 살아간다.

일요일엔 신문이 없다. 사람이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은 정보를 얻는 일이다. 취향에 따라 신문, TV, 인터넷 등에서 정보를 얻는다. 그중에서 종이신문을 선호한다. 읽고 싶은 부분만 선택할 수 있어서 좋고 시간 관리에 편해서다. 이번 월요일 신문엔 없었으면 좋을 대형 교통사고 소식이 참 안됐다.

자녀를 군대에 보내놓고 벌어진 각종 범죄도 있었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늘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라가 망하기나 한 것처럼 수선을 떠는 사람들을 봐왔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렌터 윌슨 스미스의 책에 나오는 말이라든가.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자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누구에게나 좋아할 한마디다. 당연히 왕도 기쁨을 가졌던 것이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사랑 없는 시대에 살면서 한 번도 떠올려 보기 힘든 문득 사랑의 언어들을 생각해 본다.

매력, 희생, 결실, 눈물, 인내, 즐거움, 선물, 기쁨, 협력, 모두 사랑의 언어가 아니던가. 슬픔의 언어를 바꿀 일이다.

어느 친구는 책에서 읽은 글을 이렇게 전해줬다. “잠들지 못하면 밤이 길고, 피곤하면 길이 멀고, 어리석으면 삶이 길다.”

누구에게든 한 세상 지내기가 한바탕으로 어렵게 되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을 다지면 대책 없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은가. 제주에는 여러 가지 첨예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행정구조개편과 제2공항에는 참으로 사랑의 언어가 없다. 배려, 인내, 신뢰, 믿음 같은 것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혁신안의 어느 것을 택하든 세상이 하루 아침에 확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공감하면서도 그렇다.

그 어떤 빵도 밀가루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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