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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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춘희 수필가

이사를 생각하고 아파트를 알아보러 다닌 것은 올봄이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있는 부동산을 방문했을 때 중개사는 매물이 없다고 했다. 원하는 평수나 방향 따윈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얼마 전부터 육지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파트들을 쇼핑하고 갔단다. 온라인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장바구니에 물건을 마구마구 담듯이 집도 그렇게 쇼핑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제주도 땅에 투기바람이 일더니 지금은 아파트까지 그 대상이 되어 한바탕 휩쓸고 지난 터였다. 앞으로도 매물을 찾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격도 더 오를 것이라는 말에 가게 문을 나서면서 잠시 멍했다.

상가건물 4층을 주택으로 용도변경하고 산지 30년을 넘기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큰거리는 무릎처럼 집도 수리할 곳이 생기며 나와 함께 늙어 간다. 코로나 시대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낡고 오래되고 우중충한 것들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암울한 시기에는 집안이라도 밝아야 하리라 생각하고 리모델링 견적을 받았더니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기본 틀을 완전히 뜯어 고치지 않고는 만족도가 낮다는 말에 주춤해진다.

세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의 젊은 날을 지지해준 집을 완전히 개조한다는 것은 지난 삶의 흔적을 지우는 것만 같다. 가족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집에 대한 추억 또한 얼마나 많은가.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머물렀고 손주가 태어나서 아홉 살이 되는 지금까지 찾아오는 곳이다. 명문가의 고택은 아닐지라도 우리집안 4대의 추억이 묻어 있는 이 집에 큰 변형을 주지 않고 부분적으로 고치기로 했다. 시작부터 어려움이 따랐다. 자그마한 것조차 전문가의 손이 필요하고 인력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내가 고심하며 고른 자재들이 잘 어울릴까하는 걱정에 다시 확인하기를 몇 번.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 팔며 애쓴 덕에 경비 절감은 물론 내가 원하는 자재를 고를 수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집을 그려가고 있었다. 새 옷을 사놓고 외출하기까지 몇 번씩 장롱 문을 열고 걸쳐 보았던 젊은 날 같은 설렘이 있어 피식 혼자 웃곤 했다. 내가 숨 쉬고 생활하는 공간은 어느새 내 취향을 닮아갔다. 그동안 집을 차지한 덩치 큰 것들을 치우고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묵직한 느낌의 액자들을 내리고 화사한 느낌의 그림들을 걸었다. 가끔 오는 손주들을 생각하며 스넵 사진도 붙여놓았더니 자기들 모습을 보며 깔깔거린다. 거실 한쪽에 내 시수필 액자도 수줍게 자리를 잡는다. 시원한 거실에 가족들의 역사가 가지런히 전시된 느낌이다.

오랜만에 거실에 앉아 여유로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신다. 베란다에 오종종히 피어난 꽃들이 화사함을 선물한다. 이곳에 이중창을 하지 않은 것은 옹색한 화분에서 크는 식물들에 자연바람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여름 태풍과 겨울철 눈에 화분을 옮기는 번거로움을 자초하면서도 직박구리며 동박새가 날아와 지저귀는 공간으로 두고 싶었다.

집이란 무얼까.

어느 건축가는 ‘집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했다. 나의 선택과 취향이 반영된 공간. 집은 곧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며 내 삶이 녹아 있고 영혼이 숨 쉬며 사는 곳이다. 나와 내 가족이 위로 받으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터다.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머무는 안식처. 집이란 그런 곳이 아닐까.

오늘도 직박구리가 몇 알 남은 백량금 열매를 쪼아댄다. 계단 오르기 힘들다며 지인의 발길이 드문 이 집을 찾아 주는 귀한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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