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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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비 그친 공원, 나무들은 초록을 불러들이며 그 세를 확장하느라 분주하다. 보기만 해도 눈이 다 시원한 그 곳엔 남녀노소가 곳곳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야자매트 위를 걷는 이,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이 등 나름의 시간을 갖는다.

저쪽 한 모퉁이로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도 마련 돼 있다. 같이 운동이며 산책하는 것을 보니 사람과 동물이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하긴 반려동물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미 ‘가족처럼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관심이 크기만큼 펫산업도 크게 성장세를 보인다고 한다.

각자의 취향과 눈높이 따라 반려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오늘 본 반려견들, 치장한 모양과 장식품도 가지가지다. 어떤 개는 네 발의 끝과 꼬리, 귀 끝 부분을 분홍으로 염색하여 촐랑댈 때마다 마치 꽃 같다. 또 입마개를 한 채 견주 손에 쥔 굵은 목줄은 개가 끌려가는 것인지, 사람이 끌려가는 것인지 아리송한 모습도 눈에 띈다. 마당에 묶어 먹다 남은 음식에 집이나 지키던 메리, 도꾸, 쫑을 보며 산 세대로서 쉬 적응이 안 된다.

대세다. 한 꼬마가 개를 보자 좋아 쫄랑쫄랑 따라가는데 꼬마와 개 둘 다 귀엽다. 전 같으면 무서워 도망가든지 울 텐데 서로 정겹다. 넓은 공간에 여러 종의 개가 색깔과 크기가 각각이듯 제멋대로 뛰논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아서 그런가. 넓은 곳에 서 좋아 뛰는 모습이며 장난하는 게 말 그대로 개판 아, 요즘 말로 댕댕이 판이다.

언제부터인지 애완동물이란 말 대신 반려동물이란 말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구분이 모호해 애완과 반려동물의 차이를 알아봤다. 가까이 두고 기른다는 점은 같은데 가족처럼 보살핀다는 부분이 달랐다. 반려동물은 단순히 장난감처럼 아끼는 것을 넘어 가족처럼 보살펴야 하는 책임이 더 강조된 것이다.

반려동물 보호자가 1500만 명을 웃돈단다. 하기야 TV에 반려동물 채널도 따로 있지 않은가. 가끔 뉴스나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동물학대 기사를 접할 때면 ‘어찌 사람이 저럴 수가’ 싶다가 어느 기사에서는 ‘동물이 감히 사람에게’하는 생각도 갖게 했다.

얼마 전, 유기된 개들이 사나운 들개로 변하여 저보다 덩치가 훨씬 큰 가축을 공격하는가 하면, 풀 뜯던 염소 떼를 습격하여 결국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 염소를 물어뜯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키우다 버린 개들이 들개로 변해 생긴 일이라 한다. 두어 달 전, 타 지방에서는 50대 여성이 한 야산에서 대형견에 물려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는 예도 있지 않던가. 이런 거친 행동에 오름이나 올레길도 잘 살펴 걷고 스틱이라도 갖고 다녀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지금은 없앴지만 공원 한 음수대에서 다수가 이용하는 물바가지로 개에게 물을 주는 상식 없는 일도 있었단다. 개인의 습관이나 취향에 일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허나 그 취향이나 습관엔 나와 다른 다수를 위한 나름의 원칙과 공공성이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양심과 양식의 문제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서로 피곤하다. 뭔가를 누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은 당연함이다. 나의 사소한 행동들이 더불어 가는 길에서 혹 타인에게 불편이나 불쾌감을 주는 것은 아닐지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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