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밭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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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순 수필가

구순 노모가 시골집에서 갑자기 전신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119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전신에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하였다. 응급조치한 후 집에서 한 달 넘게 통원 치료를 받았으나 통증이 가시지를 않았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해봐도 뚜렷한 병명을 모른다고 한다. 어깨부터 허리와 무릎관절까지 고통을 호소하지만,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고령에 육신이 쇠약하여 완쾌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조금이라도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차도가 없다. 지독한 고통을 호소하는데 자식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병원까지 모셔 가는 일이 전부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고 돌아오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는다.

어머니는 숨 막히는 고통이 잠시 멎을 때는 갑자기 떠나온 시골 우영밭을 떠올린다. 콩을 파종해야 할 텐데 제초작업을 하지 못하는 게 걱정이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신다. 지금 이렇게 아픈데 우영밭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 보지만 막무가내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기에 미련이 있는 것이다. 밭에 잡초를 제거하고 작물을 파종하지 못하는 처지가 못내 아쉬운 게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시골집에는 40평이 남짓한 우영밭이 있다.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매년 무·배추·콩· 마늘· 참깨 등의 농작물을 번갈아 재배해왔다. 초가집을 개량한 슬레이트 삼간 누옥(陋屋)과 우영밭은 우리 6남매가 무탈하게 자라온 삶의 터전이다. 어머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에서 수확한 각종 농작물을 추석이나 설날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곤 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재배해서 직접 수확한 농작물이라 자식이 느끼는 의미는 달랐다. 그것은 천륜의 가족에 대한 내리사랑의 징표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한 달이 넘게 집에 모시고 병원 입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쾌차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너무 고령이라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진통제 주사나 약물 처방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한다. 결국 집에서는 숨 막히는 고통을 감내할 수 없어 병원에 장기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입원한 지 보름 후에야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입원 전에는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이제 어머니는 생이 머지않음을 직감하는 것 같다. 육신의 고통에 초점 잃은 애잔한 눈빛을 보는 자식은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다.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지 못하는 심정이 너무도 괴롭다.

흔히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한다. 과학 문명과 의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연장된 일은 축복할 일이다. 그러나 늘어난 수명의 인생길을 고통스러운 환자로 연명하는 것은 불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길고 짧음의 양적인 문제가 아니다. 건강해서 사람답게 살다가 최소한의 고통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게 복이 아닐까.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인간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첨단의술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고 있으나 지금도 첨단의술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은 수없이 존재한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인간에게 내린 풀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우울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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