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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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수필가

시간이 날 때마다 마당이나 골목, 텃밭의 잡초들을 뽑아내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에는 주로 풀꽃인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마당 틈바구니에 뿌리내린 별꽃 앙증맞은 꽃잎들을 일일이 세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돋아난 꽃잔디 순을 한 무더기 뽑아내어 화분에 옮겨 심는다. 종일 그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답답한 세상 일 따위는 금세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강냉이 모종이 너무 잦다."

"엄마야!"

 

어느 겨를에 다가왔는지 이웃 아주머니가 건네는 말소리에 지레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다. 머리를 숙이고 풀꽃 세상을 들여다보느라, 말소리가 더 느닷없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의 어설픈 호미질 모습을 얼마나 지켜보았던 걸까. 엉덩이로는 옥수수 모종이 꺾이는 줄도 모르고, 눈앞의 꽃에만 정신을 파는 나를 일머리 없는 사람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옥수수 모종을 더러 옮겨 심어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슬그머니 뒤를 돌아다본다. 몇 번이나 내려준 비 덕분에 울쑥불쑥 하늘 향해 올라오다가 호미 끝에 상처 입은 여린 모종이 여러 개 눈에 띈다. 그중에는 줄기가 완전히 부러져서 회생할 수 없는 모종들도 있다.

밀식된 옥수수 모종을 떼어내며 '옮기는 일'들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이주, 이사, 이식···. 어디서 몰려왔는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걸으면서 산책할 때 생각의 메커니즘이 최고조로 활성화되는 것처럼, 손을 놀리며 풀꽃들의 세상을 드나드는 일 또한 두 발로 걷는 일 못지않은 것 같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 골목만 하더라도 민박집의 렌터카들로 가득하다. 도로표지판 때문에 삼백 미터를 더 가야 하는데 잘못 들어온 관광객들 차까지. 종종 주차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서로를 향해 던지는 '텃세',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말들이 돌담 울타리를 타고 넘나든다.

다른 곳에서 이주해오거나 이사 오지 않은 이들이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제주 토박이면서도 조상의 일부터 거슬러 오르다 보면 이주민이고, 삼십여 년 전에는 다른 동네서 이사해 온 사람이 아니던가.

아주머니가 우리 텃밭에서 당신네 텃밭으로 배추벌레가 옮겨와 집을 지었다고 우려하는 말을 한다. 집 벽에 붙은 고치를 일일이 신발짝으로 떨구어냈다고 하면서, 고치를 없애버려야 내년에도 깨끗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배추벌레 나방, 우리 텃밭에만 알을 슬어 놓을 일이지.'

이래저래 말 먹을 일만 벌여놓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다른 나라에서 귀화한 지 오래지 않은 마편초 화분만 들여다본다.

어디서 머물다가 흘러들어왔을까. 우리 텃밭에 잠시 머물다 떠나갈 풀꽃. 거창하게 문화상대주의라는 말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관심을 두다 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없는 것 아닌가는 생각을 해왔다. 어쩌면 그들과 더불어 머물다 가는 일이 불편하다고 멀리하려 했던, 나의 이기심을 덮으려는 변명이리라.

문득, 잡초라 불렀던 풀꽃들에게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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