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확인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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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73년 전 발생한 제주4·3으로 제주도민 3만여 명이 희생됐다.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이념 대립 속에 죽음을 당했다. 희생자 중 33%는 어린이·노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였다. 중산간 마을의 95%는 불에 타 사라졌고, 9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늦었지만 제주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9만여 명에 이르는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최소 1조3000억원의 피해 보상(위자료)을 받게 됐다.

그런데 양민 대량 학살은 가족관계마저 뒤엉켜 놓아버렸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희생자와 무관한 엉뚱한 사람이 보상(상속)을 받게 됐다.

4·3당시 아버지가 희생됐거나 행방불명되면 ‘아버지도 없는 호로자식’이라 불릴까봐 호적에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의 아들과 딸로 이름을 올렸다. 형제자매 등 일가족이 몰살되면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되는 사례도 많았다.

군경에 끌려가지 않도록 살아있는 아버지를 사망신고 한 경우도 있었다. 이어 태어난 아이는 가상의 아버지를 만들어 어머니와 혼인을 시킨 후 호적부(제적부)에 올리기도 했다. 4·3의 광풍 속에 부부의 연을 계속 잇기가 어렵거나 재혼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까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로 오늘날 법적으로 가족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전쟁과 같은 참화 속에 도민사회에는 많은 양아들과 수양딸이 생겨났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오래 간직했던 사진이나 유품을 보여주며 “내가, 너를 낳은 아버지(어머니)다”라는 말 한 마디에 해피엔딩으로 가족관계 정리됐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우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출생한 자녀가 친아버지와 친어머니의 자식이라고 인정받으려면 인지(認知)청구 소송을 해야 한다.

아버지가 4·3희생자로 결정되면서 친생자인 A씨가 보상을 받게 됐지만, 호적에는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된 경우는 어떨까? A씨는 먼저 큰아버지의 자식들과 핏줄(DNA)이 같지 않다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해야 한다. 이어 생부(生父)·생모(生母)의 친생자임을 확인하는 친자확인 소송도 해야 한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은 인우보증이나 증언, 목격담은 배제된다. 우선 소송을 해야 하고, 생부·생모와 유전자가 99.999%가 같다는 검사 결과로 증명을 해야 한다.

그동안 4·3과 관련된 가족관계부 정정 소송(친자확인·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서 유전자 검사를 한 이유다.

다행히 개정된 4·3특별법 12조는 4·3사건 피해로 인해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경우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정정할 수 있도록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했다.

그런데 피해 보상금에 대한 상속권자 결정은 물론 양육·파산 등 각종 재산문제와 여권 발급 등 공적 장부에도 영향을 미치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은 4·3특별법에 불구, 개별 소송을 해야만 정정이 가능하다.

정부는 4·3특별법 보완입법이나 시행령으로 소송 등 복잡한 절차 없이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유해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해선 어떤 방식으로 친생자를 확인해야 할지 고민이다.

73년 전 무고한 죽음을 맞이한 도민사회는 이제, 잃어버린 핏줄 찾기에 나섰다. 친자(親子) 관계가 올바르게 정리되지 않으면 정부의 피해 보상은 되레 갈등과 불화를 불러오게 됐다.

정부는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으려고 가족관계마저 바꿔야 했던 4·3유족들의 생이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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