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없던 ‘소비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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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슈퍼에 심부름 갈 때 아내가 잊지 않고 주문하는 건 유통기한을 잘 살피라는 거다. 특히 계란·두부·어묵·우유 같은 신선식품이라면 더 그렇다. 하루라도 유통기한이 더 긴 걸 고른다.

집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을 발견하면 10명 중 9.5명은 버린다고 답한 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 집도 몰라서 며칠 지난 걸 먹기도 하지만 기한이 지난 걸 알면 칼 같이 버린다. 두부·어묵 등 식탁 식품이 버려질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슈퍼에 가는 게 귀찮아 두 개 살까 하다가도 한 개만 산다.

그러다 보니 밀가루·소주 같은 가공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멀쩡한 것 같은데 먹어도 될지 고민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유통기한은 이처럼 탈 없이 먹고 쓸 수 있는 마지노선이자 식품의 폐기 시점으로 여겨져 왔다.

▲식품의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뀌면서 2023년부터는 음식물을 좀 더 오래 두고 먹을 것 같다. ‘식품 표시·공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돼서다. 1985년 유통기한 도입 이후 36년 만이다.

유통기한은 업체가 팔아도 되는 최종 기한이고,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먹어도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한이다. 이를 테면 식품의 안전기간이 10일이라면 유통기한은 6~7일, 소비기한은 8~9일 수준으로 결정된다. 뜯지 않고 냉장보관하면 유통기한이 지나도 우유는 50일, 계란 25일, 식빵 20일 등 소비기한이 추가될 수 있다는 거다.

이럴진대 그동안 유통기한을 섭취 가능 기간으로 오인해 폐기 또는 반품해 왔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식품은 548만t으로 처리 비용만 1조원을 넘는다.

▲세계에서 유통기한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유럽연합·미국·일본·호주 등 해외에서 일찌감치 도입한 소비기한 표기제가 국내에선 논란을 거듭하며 아직까지 도입하지 못한 탓이다. 그 이면엔 냉장유통 환경에 대한 불안감 탓에 소비기한으로의 변경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늦게나마 식품 폐기량과 온실가스를 줄여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인식 변화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대체하면 식품 값을 연간 886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단다. 이제 식품의 이상 여부 판단을 소비자의 감각에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 법제화에 내실을 기해야 국민 건강도 챙기고 낭비도 줄일 수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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