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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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여름의 광기처럼 태양은 연일 불볕을 투하한다. 태우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모양이다. 이럴 때 시간을 내어 바다나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가 하면, 직무 수행에 땀 흘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무더위엔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 사우나의 열탕 같이 데워진 줄도 모르고 말벌 한 마리가 고무대야 안의 물을 기웃거린다. 덩치 큰 애견도 혓바닥을 드러내고 헉헉거리며 그늘을 찾아다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상팔자가 된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 놓고 시간을 주물럭거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허방다리는 늘 있게 마련이다.

나는 체질상 더위보다 추위를 잘 탄다. 근년에는 당뇨약 부작용으로 겨울이면 하지 냉증에 시달린다. 그 영향인지 에어컨의 냉기류에 두 시간만 갇히면 바깥으로 탈출하게 된다. 후끈한 공기가 확 달려들며 반기면 함께 마당을 서성인다.

유튜브의 분재 채널 영향인지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봄철에 덜렁 물만 주며 팽개쳤던 분재를 소환하여 눈맞춤 한다. 분갈이도 하고 전지와 철사걸이도 하며 미래의 모양을 그려보노라면 금세 땀으로 티셔츠가 흥건해진다. 샤워실에 다녀오고 서재로 향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일과다. 그 결과 얼굴과 목, 두 팔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다.

아내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라고 지청구를 늘어놓는다. 피부를 태우면 피부암에 걸린다고 엄포를 놓는다. 난폭한 주인을 성토하는 분재의 아우성을 못 듣겠냐며 감정에 화살을 꽂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좋으니 절로 빠져드는 걸 어찌할 것인가. 삶의 기준은 결국 자신이 정하는 것을.

돌아보니 화분에 나무를 심으면 분재라고 생각하며 출발한 지가 30년쯤 되었다. 적당한 장소가 없어 슬래브 옥상에서 키웠다. 그때 경험한 게 소나무의 강인함이었다. 물만 마르지 않으면 불볕더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10년 전 이사한 이곳에서는 마당 한쪽에 블록을 깔고 분재 자리를 마련했다. 하나둘 수집한 게 제법 수가 많아졌지만, 일당백을 생각하며 명품 서너 개 키울 걸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몇 개 죽이기도 했다. 놓친 물고기가 크게 여겨지는 것처럼 그나마 좋은 것들이었다. 우듬지에 난 잎이 시들거나 변색하기 시작하면 재빨리 대처해야 하는데 물만 먹여댔으니, 뿌리가 썩을 밖엔. 본질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인다는 말이 다가왔다.

영어의 몸처럼 화분에 갇힌 나무에 비하면 자연의 흙을 품은 나무는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더위에도 과실수는 열매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한 그루 무화과나무에도 벌어진 열매가 제법이다. 맛도 좋아서 입이 즐겁다.

대기업에서 34년 남짓 근무하고 올봄에 62세로 퇴임한 둘째 처남의 말이 떠오른다. 엔지니어로 오래 근무하려면 실력과 인성은 기본적이라고. 그동안 대구의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국내외의 9개 공장 건설에 참여했단다. 전기분야를 담당한 그는 한전에서 전기를 받고 이상 없이 공장이 돌아갈 때면 졸였던 마음이 성취감으로 확 바뀌더라고. 무엇보다 관련 업체들의 어느 한 사람 다치지 않은 건 큰 행운이라고.

처남은 요즘 조카가 운영하는 시골의 비닐하우스에서 감귤을 따며 한마디 보탠다. 형님, 땀 흘리며 사는 게 인생의 멋진 모습이 아닐까요.

흐르는 땀방울은 시간을 쌓는 일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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