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복명
정직한 복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서흥식 수필가

나는 지금부터 50여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생각하고 떠올리며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아무 직업도 없이 지내던 중 말단 공무원에 합격을 하고 내가 초임 발령을 받고 부임한 곳은 A군청이었다. 남과 같이 정상적으로 학업을 이수하지 못하고 순전히 독학으로 공부해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터라 너무나 세상을 몰랐다. 남이 좋은 것이라면 좋은 것으로 믿고 마는 숙맥이었다. 이런 나에게 같은 계에 선배인 K주사가 있었는데 기안지 쓰는 법으로부터 시작해서 상관에게 결재 받는 절차까지 모든 업무 요령을 지도해 주었다.

한 3개월쯤 근무하던 어느 날 나에게 출장명령이 떨어졌다. 출장 목적은 투석식 수산증식 사업에 따른 추진 실태를 조사하고 복명하는 일이고, 복명 결과에 따라 사업지시가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촌계 사업현장으로 출장 가서 조사한 결과 나의 계산으로는 사업 추진 실적이 모자란 상태였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복명서를 작성하려는데 직속상관인 계장은 잘된 것으로 복명서를 작성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신참인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상관의 말을 들으면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고, 내가 조사한데로 하자니 상관에게 미움을 살 것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몹시 괴로웠다. 그러다가 선배인 K주사에게 상의를 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조언을 청했다. K주사은 내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복명서는 복명자의 책임이고 청렴결백한 공무원으로써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업무를 수행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복명하고 그에 따라서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는 보완토록 지시공문을 발송하여 이 사업이 원만히 잘 추진되도록 하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거의 2년 동안을 K주사와 같이 근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K주사를 만난 것이 나의 30년 공직 생활에 큰 지침이 되었다. 나는 그분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청렴결백을 배웠다. 내가 공직에 있는 동안 어떤 조그만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꿋꿋하고 정직하게 정년 때까지 대과 없이 평생을 배우는 자세로 업무를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 후 나는 J시로 근무지를 옮겨가게 되었고 K선배는 계장으로 진급을 하고 몇 군데 근무지를 옮겨가면서 근무를 헸는데 평소 지병으로 투병하시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 두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분의 생전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큰 은혜를 입은 터라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함께 그분의 고향인 시골집으로 한나절을 걸려서 찾아갔는데 그 댁엔 가족이 한분도 없었으나 그분의 영전에 눈시울을 적시면서 향을 피워드리고 쓸쓸히 돌아왔다.

“항상 성실하시고 인자하신 K계장님!

점심시간에도 무언가 손에 들고 읽고 있는 K계장님! 언제나 공부하는 모습을 견지하시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많은 사람들과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나와 K계장님은 그렇게 많은 인연 중에서도 대단히 큰 도움과 가르침을 받았던 인연이다. 그때의 미흡한 이 후배는 정년까지 근무하고 퇴직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선배님의 덕택임을 압니다.

존경하는 선배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