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귀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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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집을 나서 큰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늘 한라산의 정중앙을 마주하여 걷게 된다. 요즘처럼 맑은 날은 짙고 푸른 산의 골과 골 사이, 그 명암까지 온통 우리 집 울타리 안으로 껑충 들어와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어떤 날 안개가 산허리라도 붙잡고 휘감아 돌 때의 그 멋스러움은 신비감마저 돈다. 한라 영산이라 불리는 산의 정상을 꼿꼿하게 마주 대하기가 왠지 조심스럽다. 그럴 때면 살짝 빗기듯 걷기도 하는데 북쪽으로 뻗은 그 끝자락. 산의 한 언저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푸름이 지천인 곳에 우리 동네가 앉아 있다.

아직은 편의시설이 모자라 불편함도 더러 있지만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도로와 비교하면 체감하는 온도의 차는 물론이고 공기 맛이 확연히 다르다. 신선한 공기 맛과 선선함이 살갗으로 송송 들어오는 그 기운이 참 좋다. 그런데 동네가 커지는 중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얼마 전부터 길 가장자리 주변으로 어수선했다. 인적이 드물어 그런지 밤이면 불빛마저 힘을 잃어 더 그렇게 생각됐다.

무성히 자란 풀숲 공터에 돌무더기 몇 개 자리한 곳으로 누군가 쓰레기를 던져놓았다. 봉투가 이리저리 나뒹굴다 터져서 내용물이 사방으로 흩어져 돌아다니는 모습이 영 거슬렸다. 게다가 바람이라도 한 줄기 보태지는 날이면 이만저만 꼴사나운 게 아니다. 볼 때마다 신경이 거슬리던 차, 누군가 그 주변으로 또 쓰레기를 던져 놔 마치 쓰레기장처럼 보였다.

‘깨진 유리창 이론’란 말이 있다. 사회범죄심리학에서 쓰는 말이라 한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당장은 별개 아닐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을 중심으로 조금씩 범죄가 확산된다는 뜻의 사회 무질서에 대한 이론이다. 별생각 없이 던진 작은 쓰레기 하나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버려도 될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한 것이 나중엔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작은 양심의 결과는 지저분한 동네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그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상황이 전개된 게다.

눈살 찌푸리며 지나던 어느 날, 그곳 도로변을 중심으로 자투리땅과 주변을 정리하여 아예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새로 만들어 놨다. 외부도 화려한 색상의 페인트를 칠해 말끔하게 단장했다. 주변으로 잡초를 제거한 자리엔 갖가지 꽃을 심어 꽃밭을 조성해 놓았고, 그 옆 나무 사이로 파라솔과 간이의자도 몇 개 마련해 오가는 이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잡석처럼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너저분하던 돌무더기 주변도 어떤 솜씨 좋은 이의 손을 탔는지 어느새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럴듯한 소공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 곳 분위기가 바뀌자 동네 분위기도 덩달아 달라졌다.

높이로 한라산 우뚝한 모습이 들어온다. 계절의 순환을 제일 먼저 읽게 하는 곳. 조금만 걸어도 오름 자락의 나무와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짙은 녹음이 그지없이 싱그러운 곳. 이 시간 때쯤이면 풀 섶에 풀벌레 소리가 낮 시간 찜통더위에 시위라도 하듯 청아한 목청들로 요란한 곳. 무질서가 사라진 그 길로 접어들었다. 얼굴마다 각각의 모습으로 계절을 희롱하느라 바쁜 꽃들의 유혹, 거기로 절로 눈이 닿으면 입가로 번지는 웃음은 덤인 곳, 이젠 분위기마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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