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바다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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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미 수필가

페북 친구가 올린 사진이 눈을 밝힌다. 지난봄을 추억한다며 꽃 융단이 깔린 길을 올려놓더니, 느닷없이 상괭이 사체를 내걸어 으스스하다. 시선을 돌리려다, 생전에 모습 그대로인 사진 너머로 실낱같은 마지막 숨결이 느껴진다. 돌출된 입을 느슨하게 벌린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미소를 짓고 있다니, 주검이 되어도 자신을 해친 이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너그러움인가.

상괭이 온몸의 붉은 상처들은 무수히 몸을 퍼덕거렸을 처절한 투쟁을 보여준다. 그물이라는 좁은 공간의 사투는 차라리 포기하라고 외친다면 가혹한 일인가. 바다는 더는 바라볼 수 없어 겨울보다 더 시린 물길이었다.

지난해 제주 바다에는 상괭이 사체 50여 구나 해변으로 밀려왔다. 줄초상을 치러내야만 하는 해변에 술이라도 몇 순배 권해야 했나.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겨우 몸 누일 곳에 정착한 상괭이를 애도하는 파도의 진혼곡은 높지 않았다.

상괭이는 멸종 위기여서 해양 보호 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상괭이가 그물에 걸려드는 순간 어부들은 불행을 낚는 것이다. 돈벌이는 고사하고 해양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니 다시 바다에 버려진다. 바다를 주름잡던 용맹은 한갓 그물 자락에 휘감겨 맥없이 스러져 버렸으니 허무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옛말을 바다는 두고두고 새길 터다.

바닷물은 태양과 바람에 기꺼이 몸을 내어주고 소금이라는 결정체를 만들어 낸다. 고달픈 삶일지언정, 맛이라는 감동을 인류에게 하사할 수 있다는 건 바다의 큰 자부심이다. “평안 감사보다 소금 장수”, “소금 장수 사위 보았다.” 한 속담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바다는 슬프지 않았다. 파도와 자외선으로 부서진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바다의 맨살에 덧칠한다는 비보다. 1년에 소금으로만 먹는 미세플라스틱이 무려 신용카드 4장 무게가 된다고 하니 소금을 들여야 할지, 내쳐야 할지 난감하다.

태평양에는 한반도 7배가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까지 생겼다 한다. 플라스틱에 영역을 빼앗긴 바다는 이방인 신세인가.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이 영상은, 그 통증을 가늠하다 치를 떨게 한다. 저 절망을 어떻게 구원으로 이끌 것인가. 바다는 영원히 가슴에 묻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마스크, 장갑 등 개인 보조 장구도 바다로 버려져 바다도 코로나를 앓는다. 산소를 생장시키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존재가 위태하다. 시름시름 앓아가는 바다도, 흔들거리는 세상도, 본질 자체가 파괴라고 격한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바닷물은 원래 온도보다 7도 높게 데워진다.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 몸이야 데워진들 흐르지 않겠는가마는, 기형이 되어버리는 물고기들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어 연일 서슬 퍼렇다. 방사성 물질 세슘이라는 독성이 흘러들어 바다의 온갖 해산물은 타인이 되어가니, 어부들의 한숨은 질펀하게 바다에 물든다. 팔딱거리는 물고기들의 역동성을 만나러 새벽 포구로 나가던 사람들의 흥이 현재진행형이길 바랄 뿐이다. 거친 파도를 잠재워 달라고 용왕님께 손을 모으던 그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그 결기는 하늘까지 치솟을 태세다.

세상은 변명으로 시끌벅적 이지만, 도리어 바다는 갈매기를 높이 띄우고, 배 한 척 미끄러지듯 포구를 떠나고 있다. 어부들은 비린내를 코에 달고 살아도 비빌 언덕은 바다뿐이다. 멈칫 숨기던 갈고리 같은 손은 바다에서만큼은 명작으로 내걸린다. 일본의 몰염치에 바다를 본다는 게 계면쩍어 눈을 낮추어도, 바다는 초조한 마음을 이미 알아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저승에 맡겨둔 것을 찾아온다지만, 돌아오는 뱃길 뱃고동 소리는 기세등등이다. 애쓴 것보다 더 후하게 주어져 소박한 밥상을 꾸릴 수 있다.

그건 어머니 쌈짓돈 같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무상이다. 바다의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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