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한희정 시인

어제가 처서이다. 처서는 더위()가 그친다()’는 뜻이니 사람들도 어찌하든 여름의 후유증에서 벗어날 때가 온 셈이다. 이 무렵 선인들은 막바지 물맞이를 즐겼다. 최고의 피서 겸 모든 신경통 완화나 겨울감기 예방차원으로 물맞이하며 여름 마무리를 했다.

그디 가보게? 둑지 탁탁 물 맞으민 씨원해영 살아질 거 닮아나신디.” 살아온 날이 많을수록 그리움의 무게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코로나19로 고립 수준의 일상이다 보니 오래 전 일이 떠오르셨나보다.

여름이 되면 어머니는 동네 삼춘들과 물맞이하러 다녔다. 이때가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는 시기이기도 했다. 계절적으로 가장 무더운 삼복(三伏)이 든 유두일 중심으로 가기도 했지만 때를 맞추기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농사일, 집안일 사이사이 짬을 내어 한두 번씩 다녔다. 그러다 백중이나 처서쯤에 다다르면 조급히 몇 번 더 물맞이를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야 동네 목욕탕만가도 물 폭포나 물 마사지시설이 좋게 갖춰져 있지만 병원의 물리치료조차 자유롭지 않던 시절엔 자연 속에서 더위를 물리쳤고 만병치료효과를 찾았다.

우리 동네에선 소정방폭포나 돈내코 원앙폭포가 물맞이 장소로 유명했다. 어머니는 며칠을 계획하여 아침에 출발하면 거의 저녁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 줄지어 차례로 물을 맞는데 한번이라도 더 맞으려고 애쓰다보면 그 시각이 된다는 거다. 특히 돈내코 물은 약물이라 소문이 나서 먼 동네사람들은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잠을 자면서 물을 맞고 가기도 했다니 얼마나 간절했었는지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돈내코 원앙폭포를 찾았다. 비가 온 뒤라 폭포는 더욱 원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녹음이 짙은 고목사이로 작지만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의 하얀 포말, 그 아래 청록색 물빛과 물안개, 어머니는 오래 전 추억을 소환했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그 시절 풍경들. 추억은 그리움과 만남이었다. 그동안 우울하고 답답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씻어지는 듯 얼굴에 충만함이 가득 찼다. 그리운 건 그리운 대로 가슴에 품고 살아도 좋겠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추억은 최고의 힐링제니까.

쏴아아~ 활엽수 끝 물방울들이 어머니 등 뒤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처서 끝자락에 물맞이 한 기분이란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사라져 모두가 마음의 힘을 얻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마농지 2021-08-24 10:26:18
오십여년전 제주 어머니들이 고단한 일상속에 누렸던 호사중
하나였을 물맞이. 그시절 따라가 즐겼던 물놀이를 기억하게 해준 추억같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