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과 검사 출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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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1990년대 제주의 폭력조직은 유탁파와 산지파로 양분됐다. 유탁파는 신제주 유흥가를 중심으로, 산지파는 구제주 일대 유흥가에서 활동했다. 2005년 산지파 한 조직원이 신제주 유흥주점을 드나들다 유탁파 조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산지파 조직원은 유탁파 조직원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혔다. 유탁파는 산지파와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 차량마다 ‘연장’을 싣고 다녔다. 행동대장은 곧바로 복수를 실행하지 않은 부하들을 집합시킨 후 뭉둥이찜을 가했다.

2005년 11월 후배 조직원의 잘못을 인정한다며 산지파 조직원 A씨가 왼손 새끼손가락을 절단, 이를 유탁파에게 보냈다. 양대 조직은 가까스로 화해했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상대 조직원을 살해하라고 지시한 유탁파 간부들을 살인예비·음모죄로 구속했다. 양대 폭력조직은 나이트클럽과 유흥주점, 성인오락실의 영업을 보호해준다며 조직원을 보내 바지 사장이나 지배인으로 일하게 했다. 여기서 나오는 돈줄은 조직 운영자금이 됐다.

필자가 옛 제주경찰서를 출입할 당시 1년에 2차례 정도 조직폭력배 일제 검거기간이 있었다. 형사들이 검거한 조직원들의 죄명은 대부분 폭력·상해·협박이었다. 혈기 왕성한 20대 조직원들은 이권 다툼 속에 상대에게 폭행을 가했다. 윗선이 지시였음에도 조직을 위해 총대를 멨다. 교도소에 갔다 오면 그 만큼 대우를 받았다.

‘허벅지에 칼침 한방 놨다’는 말처럼 조직원들은 상대가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위협을 줬지만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다. 검사와 형사가 비록 자신을 처벌해도 보복은 금기시됐다. 그러면 조직은 끝장이 날 수 있어서다.

폭력조직에도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이런 룰을 깬 사건이 22년 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해사건’이다. 1999년 11월 5일 새벽, 이 변호사는 흉골(가슴뼈)을 뚫고 10㎝나 들어온 예리한 흉기에 심장이 찔렸다. 당시 44세였던 이 변호사는 가슴과 배, 왼쪽 팔 등 6군데나 흉기에 찔렸고, 과다 출혈로 숨졌다.

형사들은 설마 조폭이 검사 출신 변호사를 살해하겠느냐고 의아해했다. 다만 뜨내기 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칼질’을 해봤던 이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세간에 잊혀졌던 이 사건은 지난해 한 방송에서 유탁파에서 활동했던 김모씨(55)가 이 변호사 살해사건의 전말을 고백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러 차례 해외로 나갔던 김씨는 지난 6월 불법 체류했던 캄보디아에서 추방돼 국내로 압송됐다. 곧이어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두목 백씨가 “이 변호사를 손 좀 봐라(겁박을 주라)”고 지시하자, 부산 출신이어서 ‘갈매기’라 불렸던 동갑내기 조직원 손모씨에게 두목의 명령을 전달했다. 그런데 갈매기는 겁만 주면 되는데 이 변호사가 심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인을 지시한 두목 백씨는 10여 년 전 병사로, 범행을 실행한 갈매기 손씨는 2014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살인 배후와 동기는 미궁에 빠졌다.

방송에서는 1998년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조폭 개입설과 호텔 나이트클럽과 카지노 운영권을 둘러싼 이권 싸움에서 이 변호사가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행적을 보여줬지만 픽션과 논픽션이 교차됐다.

검사 시절, 셋방살이를 하던 여인이 아픈 자녀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금품을 훔쳤다가 잡혀오자, 조사하는 내내 같이 울었다던 이 변호사가 폭력조직에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했을까?

왜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세상을 떴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이제, 경찰과 검찰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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