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결혼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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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늦더위가 가을을 막아서보지만 푸른 가로수 잎엔 붉은 새치가 늘어간다. 더위를 피하여 계곡과 녹음을 찾아 떠돌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밖으로 향하던 내 안의 욕망의 나부랭이들을 방목의 뜰에서 거둬들여야 할 듯싶다.

달포 전에 핸드폰으로 청첩장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자 신랑신부의 이름과 예쁜 사진이 클로즈업된다. 코로나로 인해 두 차례나 미뤘던 결혼식 안내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찾았더니 예상대로 예식장 안이 썰렁하다. 그 대신 수많은 화환들이 하객을 대신해서 길게 도열해 서있다. ‘신랑 신부가 꽃보다 아름다우니 화환은 생략해도 좋습니다.’ 안내장에 이런 멘트라도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하긴 화훼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 쉽게 단을 내릴 문제는 아니란 생각도 든다.

식장의 자리에 앉아달라는 사회자의 안내에 나도 후미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예식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신랑 친구인 사회자가 주례역까지 대신하면서 식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간다. 하객들에게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주례사는 생략되고, 양가 부모님의 덕담과 신랑신부 혼인서약을 중심 절차로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며 두 사람이 결혼했음을 알리자 양가 부모님과 신랑신부의 친구들, 하객들까지 어우러져 ‘사랑’ 노래를 부르며 축하의 대미를 장식한다.

한 편의 새로운 결혼 풍속도다. 결혼 예식의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다양한 레퍼토리를 창의적으로 가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주례를 맡아줄 사람을 물색하고,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며 부탁해야 했다. 결혼을 마치고는 다시 찾아뵈어 감사의 답례를 드리기도 했다. 인생 대사에 걸맞은 노고라고나 할까. 그것만 생략해도 어딘가.

신랑신부는 예식이 끝나면 한 쌍의 신혼부부로 새롭게 태어난다. 예복을 벗고 한복으로 갈아입는 게 통례다. 그런데 오늘의 신혼부부는 그런 통례와는 달리 정장과 원피스로 갈아입는다. 깔끔하긴 하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이다. 한류로 뜨고 있는 우리의 한복을 우리 스스로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긴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살아가는 시대에 전통이나 격식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전통과 격식을 무시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삶의 태도라 할 수는 없다. 모바일 청첩장으로 안내하고, 축의금은 통장계좌로 이채하고, 감사의 인사는 통틀어 폰 메일로 쏴버리는 초간편 결혼 절차. 단어 첫 자·모만을 나열해서 의사를 전달하는 간편 지향의 신세대 문화와 같은 맥락이다. 변해가는 삶의 변화가 놀랍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떤 변화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지….

우리의 전통이나 풍습은 내 존재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정체성의 바탕이며 근간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들이 시대 변화에 맞춰 각색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배척하고 무시하려 드는 것은 자기 부정과 다를 게 없다. 삶의 대세를 좇아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게 과연 옳은지 성찰이 필요한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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