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딱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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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입추(立秋)다. 계절상 가을로 분류되는 첫 번째 절기다. 오늘따라 하늘빛이 유난히도 파랗다. 이 무렵이 되면 여름 채소는 거두고 겨울을 준비하는 김장용 배추나 무를 심는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가을이라니,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는 느낌이다. 폭염에다 코로나 마스크까지 써야 하는 힘겨운 나날들, 어서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다는 오늘이야말로 우리에겐 선물 같은 날인지도 모른다. 들판의 곡식은 시나브로 익어갈 것이고 농부들은 풍요의 기쁨을 맞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미래라 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들, 그래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미래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 우리는 예측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와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의 느낌보다는 미래의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언젠가 내설악에 있는 깔딱 고개를 넘은 적이 있다. 보기만 해도 까마득한데 넘어야 한다니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망설임도 사치라는 누군가의 말에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고락의 폭이 깊었던 기억이 난다. 숨을 쉬는데 숨이 모자라고 헐떡거리다 못해 깔딱거린다는 표현이 너무나 절묘했다. 깔딱깔딱하면서도 결국 정상까지 오르고야 마는 반전의 묘미가 도사려 있던 곳.

살아가면서 숨 쉴 수 없을 만큼 힘든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바늘구멍만 한 희망을 갖는다면 좌절하지 않는다. 앞뒤가 막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살펴보면 틈이 있게 마련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인간과 세균의 대립이 첨예해지는 느낌이다. 연달아 격상되는 거리두기 방역수칙으로 점점 지쳐 가고 있는 사람들, 휴일만 되면 산으로 바다로 훌훌 떠나기에 바쁘다. 더우면 모자를 쓰고,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서라도 뛰쳐나가야 직성이 풀린단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려해서인지 더 깊고 한적한 곳을 찾지만 안전한 곳은 없다. 이런 생활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심히 염려가 된다.

세균들은 인간을 죽지 않을 만큼의 독성으로 감염시킨다는 내용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꿰뚫어 보며 공격하는 것 같아 소름 돋지만 그들의 근성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에 사는 박쥐 수천 마리가 중국 남부지역으로 이동하게 됐는데 이상 기후로 인한 날씨가 아프리카만큼 더워졌기 때문이란다. 지금의 코로나19가 야생 박쥐로부터 전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의 이면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지구 한쪽에서는 폭우와 홍수로 도시가 물에 잠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초과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그들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점이다. 세계의 정상들과 많은 기업들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을 때 우리의 미래가 있다. 빛은 어둠에서 온다지 않는가. 지금은 숨 쉬기 조차 어려운 깔딱 고개를 넘고 있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모두의 삶이 평화로워지기를 열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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