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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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여린 초록빛의 싱그러운 애호박에 부추와 고추도 썰어 넣었다. 달궈진 팬에 반죽을 붓고 국자로 얇게 펴가며 얼른 익어라! 맛있어져라! 토닥거린다. 부침개 익어가는 냄새와 소리는 비와 찰떡궁합이다.

때를 잊은 늦장마에 부침개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친정집에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로 가득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줄곧 바느질로 우리 생계를 꾸리셨다. 10년 넘은 바느질 솜씨에 근방에서는 꽤 유명한 바느질 집이었고, 더욱이 남편 없는 집이기에 아주머니에게는 더없이 편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비가 와서 밭일 못 나가고 물에도 들지 못한 아주머니들은(동네에는 해녀가 많았다) 손에 호박 하나, 부추 한 단, 그리고 쪽파와 감자, 김치까지 제철 재료를 들고 와서는 “승희야 부침개 부쳐봐라”하셨다. 생유채 기름에 호박 부침개 네댓 장을 부치고 나면 다른 분이 부추를 들고 와서 또 부치고, 나에게 비 오는 날은 종일 부침개 부치는 날이었다.

그 기억이 40년 가까이 되는 일이지만 요즘도 비가 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부쳐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도 그 기분에 부침개를 부쳐 남편에게 두어 장 건네고 또다시 두 장을 부쳐 친정어머니에게로 향한다. “엄마! 나 어릴 때 비 오는 날 부침개 먹던 기억나세요?” “살기 바쁜데 부침개 먹을 겨를이 어디 있었냐!” 내 기억에도 엄마의 손은 아주머니들의 수다 속에서도 늘 바느질 중이었고, 행여 옷감에 기름 묻을까 부침개는 입에도 대지 않으셨던 것 같다. 동네 대부분의 집 형편이 하루하루의 생활을 걱정해야 할 만큼 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부침개 인심은 늘 후했다.

오늘 채소도 친한 지인의 밭에서 수확한 것이다. 잠깐 비가 개기에 따다 먹겠다고 전화로 통보하고서는 남의 밭에 혼자 가서 서리 같은 수확을 해온 참이다. 한 달 전만 해도 그 밭에 갈 때는 이집 저집 들려서 밭 주인이랑 지인들까지 서넛은 태우고 갔었다. 같이 고추 따고 깻잎 따고, 수다인지 일인지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혼자서 고추를 따니 처량하게 느껴지는 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금세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되니 누군가를 만나는 게 부담스럽고 불러내기도 미안하다. 그저 서로 안 만나는 게 방역을 위해 최선이라는 것이 어느덧 우리의 생각이 된듯하다. 하지만 벌써 9월이다. 모듬벌초의 시기이며, 추석이 코 앞이다. 그저 서로 조심해서 안 만날 수도 없는 날들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위드코로나”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강력한 전염병과 공존하는 삶이라는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 우리 앞에 놓였고, 우리에게 먼저 걸어가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 덮인 들판처럼 길은 보이질 않는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히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 김구 선생의 좌우명을 떠올리자. 명확한 방향이 보이지 않는 지금, 정부의 보도에 국민이 흔들림을,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지역사회가 흔들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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