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위드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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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죽음을 앞둔 아들이 홀로 남게 될 아버지에게 비디오 리모컨 조작 요령을 설명한다. 몇 차례 반복하며 설명을 해보지만, 아들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방을 나가 버린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아들은 책상에 앉아 자책하며 아버지를 위한 리모컨 조작 방법을 일일이 써 내려간다. 

오랜만에 보게 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가슴 저리는 장면 중의 하나다. 

이 장면을 보다 나 역시 퇴직한 아버지를 위해 컴퓨터를 설치하고 인터넷 사용 방법과 한글 작성 프로그램을 가르쳐 드리다가 답답하다며 짜증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 아들의 못된 행동에 차라리 뒤통수라도 때려 주셨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모습에 더 짜증 냈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기가 없으면 아버지의 유일한 즐거움인 비디오 보기를 못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컴퓨터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를 냈지만 정작 화를 내고 싶었던 사람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울고 싶은데 뺨까지 맞은 격이 되었으니 말이다.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달리 해석할 수도 있지만 비디오 리모컨과 컴퓨터로 인해 촉발된 부자간의 신경전은 우리 사회 ‘정보 격차’의 문제를 담은 축소판이라 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일하고 소통하고 관계 맺고 소비하는 방식들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우리 삶이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이게 되었지만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기 어려운 계층에는 일상에 새로운 장애물이 생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이‘정보격차’ 문제 아닐까. 

쉽게 말해 코로나19로 인해 어딜 가든 QR코드로 출입을 인증해야 하고 확진자 정보와 백신 접종 안내 등이 스마트폰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는데 스마트폰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정보로부터 소외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가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를 이용하지 못해 돌아나와야 했다는 뉴스는 ‘정보격차’가 단순히 디지털 기기 조작 여부를 따지는 기능적 문제가 아닌 차별과 배제, 고립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사회 각종 시스템이 비대면·무인화되어 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그 흐름에 발맞춰 쫓아오기 어려운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코로나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위드(with) 코로나’를 이야기할 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위드 피플(people)’을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19에 우리의 일상을 빼앗긴 것처럼 앞으로 세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로 변화할지 모른다. 그만큼 살아가기 위해 익히고 적응해야 할 것이 많아질 것이다. 자칫 어느 순간 한 눈팔다 낙오되면 누구나 정보격차의 피해자가 되어 디지털 문맹으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컴퓨터 앞에서 아버지에게 짜증 내던 철부지 아들이 훗날 그의 아들의 도움 없이도 눈부신 디지털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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