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5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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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 수필가

한 달에 두어 번 핸드폰에서 톡 소리가 들린다.

음악을 좋아했던 큰언니가 올봄부터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내게 오늘 보내온 곡은 슈베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작곡한 현악 5중주 ‘C Major D 956’이다. 현악 5중주는 각각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한 대의 첼로로 이루어진다. 실내악의 정수로 알려진 이 곡은 비올라가 아닌 두 대의 첼로로 구성되어 있다. 둥글게 반원의 형태로 앉아 연주하는 모습이 언니가 둘, 오빠, 남동생으로 화음을 자아내며 살아가는 우리 오 남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형제들의 단체 톡 방이 떠들썩하다. 남동생이 이사 문제로 어머니의 거처를 논의한다는 톡이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언니, 오빠가 묻는다.

무슨 일이야?”

재작년, 남동생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한 해는 별걱정 없이 운영되는가 싶더니, 코로나19로 결국에는 손을 들고 말았다. 견디다 못해 사채까지 손을 댄 모양이다. 평생을 막내아들과 함께 사신 어머니를 어디로 모셔야 한단 말인가.

코 흘리던 시절, 연년생이나 다름없던 남동생과 나는 초등학교 육 년을 같이 다니다시피 했다. 몇 정거장이나 되는 등굣길을 고사리 같은 동생 손을 잡고 다니곤 했다. 그리 자랐으니 두 대의 바이올린의 활이 줄 위에서 속삭이듯,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잔잔하게 나풀거리는 것이 속내를 속속들이 다 알 거라 생각했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 있었지만 서로의 삶에 바빴던 게 분명했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동생의 어려운 사정을 언니, 오빠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귀에 들린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대의 첼로도 맞장구를 치듯 둥 둥하며 점잖게 바이올린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들린다. 첼로의 피치카토 주법은 무릎 위로 떨어지는 큰 언니의 눈물 같다. 정 중앙에서 연주하는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함께 줄을 타고 난 후 첼로와도 함께하고 있다. 작은 언니가 중재에 나서서 이리저리 말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한 대의 바이올린의 활을 타는 속도가 빨라진다. 남동생은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 놓은 모든 것들을 쏟아 내듯 설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현 위에서 움직이는 활의 선율이 곧 공연장의 천장을 뚫을 기세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약속이나 한 듯 마주 보고 있는 첼로에게 협공을 펼친다.

큰언니와 오빠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큰언니가 본인을 위해 백 불짜리 지폐를 헐 때마다 몇 번을 고심한다는 이야기를 둘째 언니한테 종종 듣곤 했다. 오빠의 발이 되어 준 애마는 십오 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겼다. 두 대의 첼로에서 단호하며, 절제된 소리가 드릴뿐이다.

이것뿐이야.”라며 동생에게 선을 긋는 싸늘한 분위기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줄을 타는 활처럼 나는 긴박한 동생의 심정을 대신하듯 큰언니와 오빠에게 소리쳐 보지만 듣지 않는다. 할 말을 잊은 건가. 마주 앉은 첼로에서 슬픔 저음이 흐른다. 나는 그렇게 큰 언니와 오빠에게 죽음 직전에 운다는 백조처럼 동생의 힘든 사정을 필사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첼로의 묵직한 활이 빠르게 움직인다. “빠빠빠바 반 빠빠빠아 반큰 언니와 오빠는 열심히 살지 못한 동생을 원망하는 소리로 들린다. 한차례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제주 중산간의 언덕에도 깊디깊은 어둠이 찾아오고 나는 길을 잃은 듯 어떻게 도와줘야 되는지 내 머릿속도 한밤중이다.

일사불란하게 빠른 속도로 다섯 개의 활이 줄을 타기 시작한다. 우리 오 남매는 며칠을 고심하며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온 힘을 쏟아 내고 있었다. 결국은 오빠 내외가 주머니를 열고, 언니 둘은 동생이 자리 잡을 때까지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고, 나도 어머니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기로 매듭을 지었다. 길고 긴 밤, 그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뭔가 마음속에 품었던 숙제를 마친 것처럼,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 가벼운 느낌이다. 얼마 전에도 앞마당은 유채꽃이 일렁이는 노란 연못이었다. 간밤에 불어온 바람 탓에 하얀 나비도, 꽃도 이사 갔을까. 요란했던 연주 소리도 멈춰버린 듯했지만 그건 제 할 일을 마친 것으로 보였다. 다시 오 남매는 5중주를 연주하기 위해 서로 토닥이는 하모니로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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