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문화 유네스코 등재와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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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식 수필가

나는 오늘도 지구의 70%가 되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매일 아침마다 해안도로를 걸으며 지내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을 해변에서 바다와 같이 살았다. 제주 바다는 거칠다. 여객선을 타 보면 제주 바다에서는 정말 멀미가 심하다. 해녀들의 바다는 연안이지만 부의 바다는 멀고 넓은 해양이다. 바다에서 작업을 하며 살아가는 어부와 해녀들은 힘들고 고된 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제주 해녀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바다를 누벼 왔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러시아까지 진출해서 기술을 전수했다. 바다를 터전으로 해서 독특한 생활방식으로 살아온 해녀의 끈질긴 정신과 생활력은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태왁 하나에 의지해 거친 파도 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는 가장 제주적인 여성의 상징이다. 해녀들은 바다 밭을 채취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가꾸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승해 왔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작업 환경에 적절히 고안된 옷과 도구는 해녀들만이 생활의 지혜이다. 그 종류를 보면 물 소중이, 물 적삼, 물수건, 태왁 망사리, 물안경, 빗창, 작살, 성게 칼, 질 구덕 등이다. 물질 도구는 지난 2008년 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0호로 지정됐다. 제주의 해녀는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왜냐하면 물질은 아주 힘들기 때문이며 자식에게 일을 물려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촌 마을마다 해녀가 활동하는 바다의 어장 범위를 정해놓고 입어권이라는 독점적 권리를 주고 있다. 이것은 어족자원을 보호하고 해녀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뜻도 있겠지만 이러한 권리는 일종의 소유권으로 인식 되면서 일반 제주도민들이 바다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입어권이 없는 일반도민들은 바다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제주도 연안의 바다는 도민 누구나의 바다가 아니라 어촌계 해녀들만의 바다로 변해버린 것이다.

1970년대 초부터는 해녀들이 고무 옷이라고 부르는 잠수복을 입었는데 이 옷을 입고는 장시간 작업이 가능하고 능률도 많이 오르게 됐다. 이는 해녀들의 생계유지에 도움이 됐다. 지금은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신고 물질을 하지만 옛날에는 저고리 하나만 걸치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이조시대 정조대왕은 해녀들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좋아하던 전복을 끊었다. 정조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제주목사들도 부임해서 순찰 나갔다가 한겨울에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전복을 끊었다.

지난 2016년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발표로 그 감동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2013년 12월 문화재청에서는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시작했다.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한 지 약 3년 만의 쾌거였다. 제주도는 해녀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문화관광 상품으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평리해녀팀은 독일의 초대를 받아 해녀출가의 노래와 이어도사나를 공연한 바 있다. 고된 물질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던 제주해녀들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불렀던 노래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제주해녀 브랜드가 세계로 뻗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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