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이다. 2013년 5월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 인근 콘도미니엄 신축공사 현장에서 용암동굴이 발견됐다.
당시 터파기를 하던 포클레인 기사가 동굴을 발견했지만 시공사는 이 사실을 쉬쉬하며 동굴 입구를 모래로 덮은 채 공사를 진행해 동굴 일부를 훼손시켰다가 서귀포시에 의해 경찰에 고발됐다.
내부 제보자가 없었다면 전문가 조사를 통해 용암 종유관, 동굴산호, 용암 석순, 용암 유석, 동굴기포 등 용암 생성물이 잘 발달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확인된 동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상황이었다.
매장문화재법에 따르면 동굴이 발견될 경우 7일 이내에 행정기관에 신고해야 하는데 공사 업체가 공사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 동굴이 발견된 사실을 묻어둔 것이다.
당시 경찰에 고발된 시공사는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다.
섭지코지 사례처럼 도로 개설, 하천 정비, 상·하수관 매설 등 각종 토목공사 현장에서 동굴이 나오면 시공사와 사업자 측은 눈 딱 감고 공사를 진행하고픈 유혹을 많이 받는다. 동굴 보호에 따른 설계변경 등으로 늘어나는 공사 기간으로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 현장 인부들 말을 들어보면 동굴이 나오면 매우 골치 아픈 일이 돼 신고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매장 문화재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에서 각종 개발 사업 등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이나 파괴가 없도록 사전에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존해 후세에 물려줘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이는 없을 것이다. 반면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경우 신속하게 처리해 시민들의 재산권 행사가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보호해야 할 문화재가 없는 주변을 장기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어두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 본지에 보도된 ‘강정천 체육공원’ 이야기다.
강정천 체육공원은 천연기념물 제162호 ‘제주 도순리 녹나무 자생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귀포시는 불법으로 조성한 체육공원 문제 해결을 위해 문화재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고 문화재청은 공원 시설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라는 조건을 달고 허가를 내렸다. 서귀포시는 지난 6월부터 탄성재질로 포장된 산책로를 정비하고 조경수를 식재하는 등 환경조성 사업에 나섰다.
문제는 이 일대가 당초 문화재보호구역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문화재현상변경 허가가 아니라 문화재보호구역 해제 조치가 있어야 했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2018년 4월 제주도 세계유산문화재부 요청에 따라 현장조사를 벌여 문화재 보호구역 주변에 녹나무가 자생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 같은 해 10월 문화재보호구역 해제를 예고했다. 해제 면적은 33필지 2만6778㎡.
당시 현장조사에 참여한 문화재 전문위원들 사이에 “녹나무가 서식하지 않는 일대가 어떻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예고 기간(30일)이 지나도 아무런 후속 조치는 진행되지 않았다.
애초에 엉뚱한 곳(강정천 체육공원)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음을 확인한 문화재청이 해제 절차를 진행하다 ‘괘씸죄’를 적용해 후속 조치를 중단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강정천 체육공원 일대에 대한 문화재보호구역 해제 조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김문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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