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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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새벽 네 시, 동살 틀 무렵 잠을 깼다. 기지개에 몸속의 세포들이 돌기처럼 일어나 눈을 번득인다. 욱신거리던 뼈대들이 어제의 고단에서 몸을 빼고 나와 윗몸일으키기 너댓 번으로 화답한다. 내가 나서기 전에 몸이 먼저 말을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새벽에 깨어나면서 몸과 나누는 침묵 속의 교섭 방식이다. 기호 없는 소통이 천연덕스럽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화법에 익숙해 있다.

이 시간, 집어등 환한 바다에선 불끈 걷어붙인 어부들 두 팔의 근육이 팔딱거리는 고기들을 건져 올릴 것이다. 밤을 새워도 그들의 눈에는 졸음기가 없다. 눈두덩일 무겁게 내리덮는 졸음을 쫓으며 기다려 온, 새벽은 싱싱한 날것의 시간이다. 위로 치솟고 싶은 시간, 몇 걸음 앞으로 내디디고 싶은 시간, 드높이 날고싶은 시간이다.

초가을 새벽바람에 웅성웅성 아파트 화단의 숲이 흔들리고 있다. 어제까지 반소매였는데 얇은 바람막이를 꺼내 걸치고 밖으로 나선다. 쇠한 몸이 휘청하지만 새벽 기운에 기대려 한다. 아파트를 휘둘러 본다. 불 밝힌 창이 손꼽게 적은 걸 보니, 아직도 시간이 신새벽의 경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

희붐한 공간으로 길을 내던 눈이 화단 모퉁이에 멈춘다. ‘그래, 너도 아침형이로구나.’ 어둠 속에 빛을 돌려받지 못 했지만 길쭉이 뽑아 올린 꽃대만 봐도 꽃무릇인 걸 왜 모르랴. 뜬눈으로 밤을 새워 잎 기다리노라 가쁜 숨결 잦아드는 걸. 슬슬슬슬. 그 숨소리, 한밤중 대나무 숲 위로 이슬 내리는 소리로 들린다. 그 소리 속으로 섞이는 댓잎 부딪는 소리. 소리 잦으면 잎이 돋아나겠지만, 꽃이 진 자리인 걸.

찍찌직. 훔칫했다. 숲에 숨었던 직박구리 한 쌍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진다. 잽싸고 익숙한 날갯짓이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라 하는데, 오염된 도시는 저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잖은가. 날이 밝아 더 탁해지기 전에 먹이부터 해결할 양인가 보다. 저 부지런, 울음소리 거칠다고 나무랄 게 아닌 걸 눈앞에서 보고 있다. 조상 적부터 저랬을 것 아닌가. 이 시간에 일어나 둥지를 박차는 저 투신(投身).

시간이 꽤 흘렸다. 온갖 사상(事象)들이 윤곽을 그려 가며 존재를 드러내 놓고 있다. 빛깔을 다시 올리고 흩어진 선들을 주워 모아 둘레와 너비와 길이를 짜 맞춘다. 이 무렵이면 날마다 어떤 손이 일찍 일어나 만물을 공작(工作)하는가. 능란한 솜씨가 놀랍다. 한 치 어긋남도, 한 구석 빠뜨림도 없는 완벽한 재구성, 재창조다.

두어 걸음 내딛는데, 웬 벌레 한 마리 화급히 줄달음질 친다. 아차 했으면 비명횡사할 뻔했는데 운수대통했다. 나도 한껏 신중했었다. 녀석을 뛰어넘는 엇박자 걸음걸이. 뇌의 명령 하달 직전 의식의 순간 작동이 스스로 감탄감이다. 아뿔싸! 우쭐대려는 게 아니다. 한낱 미물도 생명이라 무심코 그렇게 돌아간 것이지만. 녀석, 지금쯤 어느 구멍에 숨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 겸손이다. 깨어나는 마음이다. 돌아보는 마음이다. 배우려는 마음이다. 듣고자 하는 마음이다. 속에 꽉 채운 것을 버리려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부족한 것을 알아 새벽에 채우려는 마음이다. 그 마음들이 바로 겸손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겸손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 겸손이라 한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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