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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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칼럼니스트

요즘 재미있는 말이 떠돌아다닌다. 예전엔 ‘황혼이혼’이 그 자리를 차지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사노라면, 한 세상 사는 것이 한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수월하기도 하면서 어려움도 지나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항상 꾀를 잘 내는 것처럼 자녀에게 ‘요령’을 가르치는 부모는 이제는 스스로 함정에 빠진다.

그러면 ‘졸혼’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황혼이혼처럼 그것이나 저것이나 황혼이혼처럼 될 뿐이다. 졸혼은 그래도 황혼이혼이 아닐 뿐이다. 맞는 얘기인가. 필자도 세월에 부딪치면서 이제 70세다. 좀 더 좋은 생활을 하고자 했으나 사노라면 그게 그렇게 되는가.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았으니 복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사람의 길을 걸어온 보통사람이다.

누구든 황혼이혼의 나이가 되면 졸혼은 슬며시 찾아온다. 막말로 자녀들도 독립을 하고 했으니 그동안의 충정(?)이 당당하게 찾아오지만, 그래도 참을 만한 것이 우리다. 마음 약한 사람은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보통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다. 스스로를 이기고 볼 일이다. 스스로를 이기면 못 이길 일이 없지 않은가. 너 자신을 알고 스스로 이기기도 참 힘들다.

졸혼이 자랑은 아니다. 같은 지붕 아래서 수십 년을 같이 산 것을 생각해서라도 졸혼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노라면 졸혼 같은 어려움도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더 큰 희망이 생긴다. 희망으로 크는 삶이 어렵다는 사람을 들어본 일이 없다. 희망이나 우리의 슬기는 황혼이혼이나 졸혼을 나서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바닷물은 3%의 소금기 때문에 썩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가보다 하면 당신은 높은 점수다. 좋은 쪽으로 긍정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졸혼하지 않고 서로 결혼생활을 이어감이 오죽 좋은가.

이제 우리 부부가 사는 집에서 가끔 라면을 끓일 때가 있다, 늦게 들어온 아내가 밥이 없을 때 아내가 라면을 끓여달라고 아양을 떨 때 나는 기꺼이 수긍한다. 라면 끓이는 데는 도사이기도 하다. 물과 스프의 적당한 양을 넣고 알맞게 익으면 그만이다. 자꾸 그러다 보니까 거의 맛있는 라면을 내온다. 아내는 선과장에 늘 나가기 때문에 늦을 때가 많고, 나는 천하백수다. 백수면 아내한테라도 잘 보여야 밥은 얻어먹을 것이 아닌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다.

남자가 쫀쫀하게 부엌에나 들락날락 한다고 하지 마시라. 요즘은 돈 벌어올 능력이 없으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햇빛 쏟아지는 야외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새카맣게 탄 배우자도 생각을 해야 한다. 곱게 화장을 해서 한 번 밖으로 나가고픈 희망을 접고 있다.

밖으로 나서면 온통 여자의 일이다. 제주도에도 밀감 수확철, 마늘 수확철 등 이제 여자의 꿈을 접을 뿐인데, 맞는가. 허술한 농약 살포용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일을 하기도 한다. 여자로선 힘들고 위험하기도 하다. 자기 농사를 위하여 돈 주고서 사람을 빌려 일을 하는 농가는 없다. 농가의 80%가 아직도 직접 농약을 다루고 있다. 수십 만 원의 돈 때문에 그렇다.

‘졸혼’이 고유명사로 쓰일 날이 멀지 않았다.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는 것도 의외로 간단하듯이, 졸혼도 황혼이혼처럼 그렇다. 여기서 충분히 예습을 했고, 졸혼의 쉬운 길을 가르쳐 드렸으니, 날로 씀에 편안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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