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기억계승과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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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1989년 슈만과 스콧은 미국 사회학 학술지(American Sociogogical Review)에 ‘세대와 집합기억(Generation and Collective Memory)’이란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은 그 연구에서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 때 형성된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은 우리가 왜 4·3의 후세대 기억 계승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세대에서 기억과 망각의 선택적 과정이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집단적으로 회상되고 문화적으로 표상되는 기억들은 한 세대의 4·3에 대한 정체성과 담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4·3처럼 3세대를 넘어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억의 세대 계승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기억들과 담론들이 후세대에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후세대 기억의 사회적 틀을 이해하게 한다.

사회학자 권귀숙은 『기억의 정치』라는 책에서 4·3에 대한 것들이 제도화되고, 이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세대 단절 및 망각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4·3에 대한 기억은 경험자뿐만 아니라, 후세대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후세대의 기억은 4·3의 이해에 대한 현재 상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은 그것을 매개하는 문화적 매개물들과 관련이 많다. 교육과 문화적 매개물들은 4·3에 대한 기억을 공고화하고 집단적으로 전승되는 과정을 연결한다. 따라서 때에 따라 이런 것들이 다양한 기억을 제한하고 망각을 유도하거나 수동적 태도를 지니게 하기도 한다.

작년 필자는 4·3기억에 대한 4~5세대 계승과정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연구에서 필자는 놀랄 만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예상대로 후세대들은 4·3 관련 문화 행사와 교육을 통하여 4·3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높아져 있었으며 이전과 비교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4·3에 대하여 타자화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선조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감사의 태도를 보이는 공감력은 높지만, 이것을 내면화하여 4·3에 대하여 표현하거나 대화를 이끌어내는 소통능력은 떨어지고 자아확장력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자신이 4·3과 연결된 후세대라는 인식에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억을 매개하는 장치들과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피해중심의 교육과 문화적 표상, 추상적인 담론 중심의 문화적 장치, 비신체적 활동들이 혹여 4·3에 대한 후세대의 타자화를 나타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적극적 이해와 조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원초적 사건에 대한 해석 못지않게 가족공동체와 마을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하였던 노력, 진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모든 시간과 생애를 투여했던 의지 등 우리가 조명해야 할 4·3시기의 삶은 너무나 많다.

사람들의 삶은 의지의 표상이고 당시대의 세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시대 시대마다 4·3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삶의 의지와 표상은 달리 나타났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적 기억들은 정반합의 기억투쟁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세대 기억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제 4·3에 대한 기억과 세대의 문제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아야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후세대가 생동적으로 4·3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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