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소갈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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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숙 수필가

계란만큼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음식 재료가 있을까.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계란찜, 삶은계란, 계란말이, 장조림 등.

또 국수와 떡국의 고명으로 턱 하니 맨 윗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가격이 저렴함에 힘입어 약방의 감초처럼 안 끼는 데가 없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야채와 고기, 생필품은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집어넣으면 된다. 제일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계란이다.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운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열 개짜리를 사야 할지 한판을 사야 할지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열 개를 사고 나면 금방 후회가 밀려온다. 삶거나 계란말이를 하면 두 번이면 끝난다.

당근 마켓에서 주마다 계란을 배달해 준다는 광고를 보았다. 나의 고민과 번거로움을 말끔히 해결할 좋은 방법이었다.

비대면의 장점을 이용하여 10회분을 먼저 입금하면 문 앞으로 배달되는 이점이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 배달을 받은 다음 날부터 계란에 금() 자가 붙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세가 지속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값이 치솟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한 개쯤 깨져도 아까운 마음도 없이 쉽게 버렸던 것인데 배달되어 온 계란이 더 소중해졌다.

계란은 아기의 첫 이유식에도 빠질 수 없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 중 제일 맛있고 기억에 남는 음식이 계란간장밥이라고 했다.

사발에 방금 지은 흰쌀밥을 뜨고 계란스크램블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김 가루 살살 뿌려 쓱쓱 비비면 훌륭한 한 끼가 된다.

나는 라면을 끓일 때 꼭 계란을 넣는다. 강한 국물 맛을 중화시키는 데 한몫한다. 순두부나 해장국을 좋아하는 것도 계란이 있어서이다.

한 개 풀어 넣으면 건더기와 어우러져 감칠맛을 더해준다. 노른자의 익기 정도로 기호가 갈린다. 나는 완숙파였다가 요즘은 반숙파로 바뀌는 중이다. 반숙이 고소하고 덜 퍽퍽하여 소화가 잘되는 것을 경험하고부터이다.

계란말이는 프라이팬에서 스펀지처럼 부풀어 오를 때 귀퉁이를 떼어먹으면 제맛이다. 계란이 귀하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계란말이에는 밀가루가 들어갔다. 김밥을 쌀 때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어찌나 맛이 좋았던지.

가끔 계란프라이는 음식의 격을 높여준다. 햄버거스테이크를 잘 익혀놓고 그 위에 얹으면 보기에도 근사해진다. 오늘 우리 집 저녁 메뉴가 불고기 덮밥이었다. 오목한 접시에다 밥을 뜨고 불고기를 덮으면 그냥 평범한 덮밥이지만, 계란프라이 하나 얹었더니 황후의 식사가 되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을 준비하는 데 전화가 걸려왔다. 계란값이 너무 올라 불가피하게 인상할 수밖에 없고 나머지 금액에서 공제하겠다는 내용이다.

무슨 소리예요!”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된장국이 끓어오르자 내 목소리도 한층 높아졌다.

~ 네 다음에요.” 상대는 뒤끝을 흐리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알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까짓 게 뭐라고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마음과 달리 내뱉어진 말에 대한 사과와 주마다 편하게 문 앞까지 갖다주는 정성에 대한 감사하다는 내용과 함께 추가 금액을 입금했다. 나에게 마땅히 대접을 받아야 할 계란이 푸대접을 받은 것이다.

다음날, 상대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죄송하다며 계란을 배달하면서 구운 계란 한 개를 용서의 뜻으로 놓고 갔다. 디포리라고도 불리는 밴댕이는 육수를 내는데 그만이다.

어부들은 밴댕이가 그물에 잡히자마자 죽는 게 밴댕이의 속이 작고 성질이 급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속이 좁거나 마음 씀씀이가 소심한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나는 밴댕이 소갈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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