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색 사유(秋色思惟)
추색 사유(秋色思惟)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가을을 잘 함축한 말이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이 한 단어에 가을이 담겨 충만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눈 시리게 푸른 가을하늘이 창공(蒼空)이다. 구만리 장공, 높고 푸른 하늘빛이다. 가을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본다. 높은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저것이 원초의 자유다. 치솟거나 그냥 흐르며 날아간다. 제가 선택한다. 날개만 흔들면 되는 낢의 자유자재한 저 경계, 무애(無碍)다. 맑게 갠 가을 하늘이 무대다. 새를 한낱 미물이라 업신여길 수 있으랴. 사람이 갖지 못한 저 비상과 선회의 날갯짓 앞에 말이 다 부질없고, 과학이 무력하고. 철학이 빛을 잃는다.

초가을이면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 태풍이 제대로 올 모양이다. 바람이 오기도 전에 산엔 몇 백 밀리라며 사방에서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물 폭탄 세례에 도로가 무너지고 가로수가 뽑히고 전신주가 쓰러지고 자동차가 떠내려간다고 영상까지 내보낸다. 참 불안하다. 자연에 투덜댈 일인가. 인간이 자연에게 지은 죄업인 것을.

아파트 13층에 움츠려 앉아 창 너머 건너편 숲 아래를 내다보다 깜짝 놀란다. 굵은 빗발을 맞으며 선홍의 꽃들이 대책 없이 흔들거리고 있다. 꽃무릇이다. 길게 뽑아 올린 꽃대에 만개한 저 꽃들, 먼저 피어 잎을 마중하려다 큰비를 만났다. 빗줄기가 후려칠수록 더 붉게 상기 되는 민낯이 곱다. 잎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원초부터 짊어진 저들의 숙명일까. 잎이 피어나는 소리를 귀 대고 기다리는데 쏟아지는 저 빗소리 바람소리. 곡식과 열매가 무르익어 거둬들이듯 저들도 꽃과 잎의 만남이 이뤄질 수 없는 걸까. 다들 잎이 난 뒤 꽃인데 이상도 해라.

나는 몸에 걸치고 입에 풀칠하고 몸 거둘 집이 있으니 됐다. 무엇을 더 얻고 차지하려 않으니 마음 비워 홀가분하다. 이 가을, 내 정신이 한층 그윽해지기를 빌고 싶다. 얕은 지식이나마 한 겹 포개지기를, 할 수 있다면 살아온 인생이 완성까지 가게 되기를, 그리하여 길게 남지 않은 날들이 평안 속에 있게 되기를.

더욱이 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얕은 지식이나마 병들지 않아 싱그럽기를 바란다. 앎[知]이 병들면 나중 어리석게 된다. 어느 시인이 음성이 귓가로 내린다.

“세상을 망치는 것은 지식인이지요.”

말속의 지식인은 어설프고 설익은 사람일 것이다. 아는 것 [知]을 숙성시켜 지혜로움[智]으로 만들지 않고, 설익은 것을 조급하게 그대로 뱉어대는 병든 지식[痴]을 넘쳐나게 하는 사람이 세상을 망친다.

이를테면 문학이라는 것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지식[知]이 병들어 치(痴)가 되지 않게 잘 숙성시킨 [智] 그런 문학을 해야 인간 세상에 마침내 그 향기가 넘쳐나는 숲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숲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무애(無碍)·자유(自由)의 행복을 누릴 것이고.

그 길을 무엇이 가로막고 누가 억누르고 훼방 놓으랴. 무애(無碍)는 만해 한용운이 슬며시 꺼내 쓰곤 하던 말이 아닌가.

태풍이 온다 하나 그도 오면 반드시 간다. 바람 앞에서도 평상심을 지니고 싶다.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기겁하지 마라. 바람 뒤, 처음으로 낙엽이 나뒹굴 것이다. 낙엽은 그곳이 길이든 길 아니든 거침이 없다. 계곡에 진 잎들은 어느새 떼 지어 흐르는 물을 쫓을 텐데…. 낙엽을 보며 마음에 두 글자를 새기리, 무애(無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