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만년설과 한라산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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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욱 편집부국장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의 한 구절.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장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가왕(歌王)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이 노래 가사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이란 뜻을 지닌 킬리만자로는 적도 부근에 위치한 아프리카 최고봉(5895m)이다.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정상에 만년설(萬年雪)이 덮여 있어 ‘지구의 신령’으로 불리는 킬리만자로. 병든 도시 문명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만년설 같은 순수의 꿈을 찾아 헤매는 헤밍웨이 소설 속 표범처럼 킬리만자로는 하나의 이상향이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던 이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지구온난화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상 부근 계곡 등에 만년설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우리들 머릿속에 각인된 웅장하고 드넓은 만년설의 모습을 감춘 지 이미 오래다.

만년설과 함께 킬리만자로가 주는 고산지 특유의 ‘시원한 기온’과 ‘충분한 물’이 사라지면서 주변의 커피와 옥수수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으며 식수난, 가뭄 등의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득한 먼 옛날 지구가 빙하기 시대에도 살아남았던 한라산 구상나무. 해발 1400m 이상의 광활한 고원에 펼쳐진 울창한 구상나무숲은 한라산을 찾는 모든 이들의 찬탄을 자아내게 했었다.

이 구상나무를 처음 찾아내 학명을 붙이고 학회에 보고한 사람은 윌슨(Ernest Henry Wilson·1876~1930)으로, 1915년께 제주에서 구상나무를 처음 채집해 1920년에 신종으로 발표했다.

이처럼 구상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한반도 남부지방의 일부와 한라산에만 자라는 한국의 특산식물이다. 하지만 이 구상나무도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처럼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차 그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울창한 숲이 점점 사라지고 생선 가시처럼 마른 나무가시만 앙상히 드러낸 채 죽어가고 있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과 충북대 연구팀이 2017년부터 3년간 한라산 해발 1600~1700m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 120개체의 나이테와 지난 32년간의 기상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 봄과 여름 사이에 63%인 76개체가 고사(枯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 때문.

과거 한라산 고산지대에는 4~5월까지도 겨울에 내린 눈이 남아 있어 식물들의 봄 생장기에 구상나무에 수분을 공급, 광합성 작용과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했지만 지구 온난화로 한라산에 내리는 눈의 양도 적고, 봄에 일찍 눈이 녹아 내려 봄철 건조기에 구상나무가 수분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상나무는 어릴 때부터 원뿔형의 아름다운 수관을 갖고 있으며, 잎이 부드럽고, 향기도 내뿜어 전 세계적으로 명품 크리스마스 트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킬리만자로가 눈물을 흘리고 있고, 한라산 구상나무가 더 이상 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과 한라산 구상나무가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킬리만자로 만년설과 한라산 구상나무를 사진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로만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이 내리는 준엄한 경고를 받아 들여 이를 극복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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