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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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정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의 이파리들이 바람을 타고 내려앉는다. 나날이 그 수가 느는 것을 보니 점점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나브로 수분이 말라가는 제 살을 깎아서라도 모진 겨울을 가쁜 숨 몰아쉬며 살아남기 위한 제 나름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가지마다 알차게 영글었던 단내 품은 열매를 아낌없이 내어주고는 이내 말라가는 가지의 모양새가 꼭 어머님 손등처럼 다가와 애처롭기 그지없다.

원래 좋지 않은 피부인데다 관리에도 무관심한 필자의 살갗도 계절을 타는지 부지런을 떨며 씻어도 종종 가려워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손이 닿는 곳은 무심코 긁으면 그만이지만, 등이 가려울 때는 참으로 난처해진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아무리 유연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손으로 등을 제대로 긁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등을 내밀기도 마뜩찮아 문갑 위에 놓인 효자손을 들고 가려운 곳을 맘껏 긁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시원해진다.

효자손! 누가 명명했는지 몰라도 참으로 그럴 듯하다. 필요할 때마다 즉시 대령하여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니 이보다 더한 효자가 또 있으랴 싶다. 그렇다. 효자가 되는 길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송강(松江)부모님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라.” 하였거늘, 조불모석(朝不謀夕)하며 살아 홀로 계신 어머님도 제대로 보살펴드리지 못하는 자괴지심(自愧之心)을 어이할꼬.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내 자식들이 효자이기를 바라는 것 또한 심한 이기심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돌아보면 효자손이 필요한 곳이 어디 가려운 등뿐이랴. 여의도에는 있을까, 북악산 기슭에는? 우리네 삶이 하루가 다르게 팍팍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넋두리가 만연함이 단순히 현실을 회피코자 하는 푸념만은 아닐 터. 먹고 사는 일이 중대사였던 필자 또래의 베이비부머들은 배곯지 않고 하루를 나는 게 소박한 꿈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 배는 부르지만 맘 편히 발 뻗고 쉴 한 뼘 공간 마련조차 쉽지 않은 주의식’(住衣食)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꿈은 과연 무엇일까.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엔 그나마 타인의 아픔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이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었기에 어려움을 감내하며 살 수 있었다.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현실은 어떤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바람이 알싸하다. 모진 겨울이 지나 따지기때가 되면 진정 효자손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여 서민들의 가려운 등을 시원스레 긁어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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