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人生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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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1991년 4월 19~20일 제주 중문관광단지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쵸프 전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소 협력 방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외교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다.

당시 초년 기자였던 필자는 안덕면 사계어촌계를 방문한 김옥숙 여사와 라이사 여사를 동행 취재했다. 두 영부인은 사계리 해안에서 해녀들이 소라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현장을 둘러봤고, 신혼여행객들에게 직접 선물을 주기도 했다.

▲한소 정상회담은 제주가 국제 평화외교의 중심 무대로 부상하는 시발점이 됐다.

1996년 4월과 6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잇따라 제주에서 개최하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 2004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2009년 6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이명박 대통령과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의 정상회담, 2010년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참석한 한·중·일 정상회의가 제주에서 열렸다. 이와 별도로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도 각각 1995년과 1998년 제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2000년 9월 북한 김용순 당비서가 제주를 방문한 데 이어 그해 10월 남북 국방장관과 남북 고위급회담이 연이어 제주에서 개최되면서 제주는 2005년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받기에 이른다.

▲한소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유족들이 공개한 유언에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듯이 노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12·12 쿠데타 주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무력진압, 5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구속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노 전 대통령에게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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