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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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감귤이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익어가니 수확하느라 손길이 바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한 해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할 텐데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래도 수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올 해 잘 달리지 않은 나무는 내년에는 잘 달리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위안을 삼고 또 제때 관리하지 못했거나 날씨로 상품가치가 떨어져도 내년이라는 소망이 있어 다시 일어선다.

추수의 계절, 내 삶의 자락도 가을이 깊어 가는데 올 한 해는 무엇을 수확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빈손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빈손이 아니다.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만도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건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건강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쫓아가는 삶에서 이제는 내려와 무엇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가질 수 있는지 셈을 해볼 나이가 되었다. 가지고 싶지만 이쯤해서 내려놓을 줄 알아야 삶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 많이 가지려고 쫓기듯이 옆도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달려왔던 시절을 돌아보면 찬찬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을 보지 못하고 그때그때 주는 행복을 많이 놓쳐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온 삶이 아닌 또 다른 길을 내고 있어서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나올까 싶다. 통장에 들어오는 것이 적어도 가족과 함께하는 쪽을 선택한 부부들, 부족하기에 불편한 것들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그 삶을 살아간다.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는 사회에서 이탈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들이 얻은 수확이 적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사용할지는 각자가 다르기에 수확도 다 다른 것이니까.

평생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익숙해지면서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얻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다보니 자연히 주변에 있는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주는 여유와 행복을 얻고 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파란 하늘이 저리도 고운지, 그리고 청량하고 싸한 바람결이 너무 좋아 하루하루가 아쉬움이다.

아쉬운 이 계절에 모두가 가을걷이로 바쁘지만 우리의 시선이 무엇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수확이 다 다름을 알아가며 자족함을 배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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