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과 잃어버린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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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부)는 부모, 자녀, 배우자의 인적사항과 출생·혼인·사망이 기재된다. 나의 뿌리와 가족사를 국가가 증명해 주는 공증서다. 상속·부채·부양·양육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는 증명서이기도 하다.

대량 학살의 광풍이 온 섬을 휩쓸어 버린 제주4·3사건(1947~1954년)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핏줄을 끊어 놓았다.

온 가족이 몰살되면서 고아가 속출했고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읜 유복자들이 쏟아졌다. 어린 자녀를 키우기 위해 아녀자들은 재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 끊긴 집안은 제사와 벌초를 위해 4촌·5촌 조카를 양자로 삼았다.

생부(生父)와 친생자 관계가 아니지만 가족관계부에는 부자 관계가 된 이유다. 더 나아가 희생된 아버지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손자가 부자 관계라고 기재하거나 가상의 아버지를 만들어 친부·친자라며 호적에 올린 사례도 있다.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등록부가 나온 이유다. 제주4·3과 관련, 법원 판결로 호적이 정정된 사례는 A씨(72·여)가 유일하다. 서귀포시 성산읍 출신인 A씨는 4·3의 광풍으로 아버지가 희생되자 5촌 삼촌(당숙)의 딸로 호적부에 이름을 올렸다.

A씨는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2014년 소송을 제기, 기각·항소를 거듭한 끝에 2017년에야 송사를 마무리했다.

우선 A씨는 5촌 삼촌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증명을 위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에 이어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 A씨는 이모와 유전자(DNA) 대조 검사로 친모는 확인됐지만, 희생된 친부 입증을 위해 고모를 법정 증인으로 세운 끝에 법원으로부터 친부 관계를 인정받았다.

잃어버린 핏줄을 되돌리지 못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4·3희생자 유족은 적게는 500명에서 많게는 1000명으로 추산된다.

뒤엉켜 버린 가족사는 이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정부가 이르면 내년 3월부터 희생자 1인당 9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로 희생자의 배우자는 물론 친생자가 보상금을 상속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혈육인 딸을 대신해 양자로 들여 온 조카가 보상금을 받는 경우다.

오래 전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후 어머니는 이미 돌아갔으나 이 남자와 사이에 난 아들이 있는 사례도 그렇다.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동복이부(同腹異父) 동생은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상속권자가 될 수 있다.

상속법은 가족관계등록부 상 4·3희생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기재돼 있으면 그들이 가장 먼저 공동으로 상속을 받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으면 그 다음으로 부모가 상속을 받는다. 부모도 없으면 형제들이 그 다음 순위가 되고, 형제들도 없으면 3촌을 거쳐 최종적으로 4촌까지 상속순위가 내려간다.

정부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중 제주4·3을 국회 입법을 통해 처음으로 보상을 해주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가족 간의 핏줄은 이미 뒤엉켜버린 상태다. 소송을 통한 호적 정정은 절차가 까다롭고 쉽지 않다. 무덤을 파서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한 후 유전자 검사라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은 이 마저도 불가능하다.

보상금을 둘러싸고 살아있는 혈육이 눈물을 흘리게 됐다. 보상금 상속 분쟁을 놓고 형제자매 간, 사촌 간 줄 소송도 예상된다. 입법·사법·행정부는 뒤엉켜 버린 4·3유족들의 가족관계를 외면하고 있다. 화해와 상생으로 꽃피운 4·3정신에 원망과 미움이 싹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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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2021-11-05 11:06:32
제주의 제사문화를 보고 놀랐었습니다.
(타지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제주의 조상에 대한 예와 믿음을 보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한이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꼭 이루어지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