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소랑 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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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 수필가

숨죽이던 바람이 작은 가지를 흔들어대다가 단비를 몰고 온다.

동편으로 향할 때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을지언정 산천초목이 모두 내 벗이요 어른들인 것 같다.

고향마을 안에 들어서면 눈감아도 보이는 옛집이 오도카니 앉아있고 물동이 이고 걷던 골목길도 덩달아 다가선다.

그곳의 바다는 한적했다.

물질하던 그 옛날 삼춘들은 어디로 다 떠나갔는지.

사람들을 피해야만 안전할 수 있는 요즘 시국에도 삼춘이 사는 동네는 고요하기만 하다.

큰 욕심 안 부리고 물숨 먹으며 땅을 일구어 사는 사람에겐 하늘의 손길이 따르는가 보다.

삶의 고달픔도 먼바다에 내려놓고 어디 갔다 왐서, 밥은 먹어서.” 삼춘들은 이런 얘기들로 정을 나눠가며 하루를 열어간다.

옛일이다.

부모님은 자식을 여럿 잃고 나서 상심이 크셨는지, 내 나이 아홉 살이 되어서야 평대초등학교에 보냈다.

그 후, 4되는 통학길을 홀로 걸었다.

고통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구름과도 같은 손님이었을까.

걸음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던 날에도, 신작로 바람을 맞으며 학교 길을 걸어 다닌 일이 내 삶의 부처가 되어 주었다.

한밤 선잠에서 깨어날 때도 삼춘들 생각이 많이 난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집안에서 요양 중이셨을 때, 가까운 이웃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왕래하며 위로를 건네셨다.

예전의 고마웠던 일들을 반추하다 보면 내가 살아가면서 갚아야 할 도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득 몇 달 전에 본 해녀 이야기 영화가 떠올랐다.

서울 총각과 나이 든 해녀의 사랑을 그린 빛나는 순간이란 영화다.

물숨을 참으며 너른 바다에 몸을 맡기는 여인.

서른세 살 나이 차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삼춘과, 바다에서 연인을 잃었던 총각은 서로를 이해하며 위로의 시간을 갖는다.

그를 따라 서울로 가려고 가방을 챙겼던 삼춘은 병든 남편의 방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짐을 놓아 버렸다.

삼춘,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어떻게 말해요?”

이녁 소랑 햄수다.”

여인의 대답은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묻혀만 가고 있었다.

저 망망대해에서 물살을 가르며 밭이랑에 소망을 심는 동네 삼춘들은 거친 바람도 마음으로 길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부대끼며 흐르던 강물이 바다에 이르듯, 누구에게나 인생의 빛나는 순간은 찾아올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오늘처럼 가을바람이 손짓할 때면 고향으로 내 마음을 띄워 본다.

설익은 곡식의 눈인사와 골목길 쉼팡돌 사이로 삼춘들의 따스한 말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시간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부모님이 걸으셨던 마을 안길에서 이제는 삼춘들의 발자국 위를 걷게 된다.

바람이 그리움을 몰고 온 것일까.

나의 삶 속에서 마주했던 세월을 되뇌이며, 바람 부는 날 나는 다시 동편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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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2021-11-05 12:01:00
억지로제주말허지맙서 소랑햄수다허는
제주도사름이어디이수꽈 그냥좋아햄수다
라고허면되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