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70년 한 맺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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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나의 뿌리, 내 호적을 찾습니다’ 증언 본풀이 마당
강순자씨 외삼촌의 딸로 인생 살아...김정희씨 '가상의 인물'이 아버지된 사연
정부, 내년부터 보상금 지급 예정이지만 가족관계 뒤엉켜 받지 못할 상황 놓여
제주4·3연구소는 4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스무 번째 증언 본풀이 마당을 열었다.
제주4·3연구소는 4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스무 번째 증언 본풀이 마당을 열었다.

제주4·3사건이 몰고 온 대량 학살의 광풍으로 가족과의 인연마저 끊긴 이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찾기에 나섰다.

아버지가 희생되면서 남의 자식으로 살았던 이들은 지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있다.

제주4·3연구소(이사장 이규배)는 4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나의 뿌리, 4·3의 진실-내 호적을 찾습니다’를 주제로 스무 번째 증언 본풀이 마당을 열었다.

강순자씨
강순자씨

강순자씨(77·애월읍 하귀리)의 부친 강상룡씨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던 어부였다. 1948년 12월 마을 청년 26명과 함께 토벌대에 끌려간 후 총살당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어머니는 재가를 하면서 강씨는 열 살 무렵 외삼촌의 딸로 호적(제적부)에 올랐다.

강씨는 “가족관계등록부에 지금도 외삼촌의 딸로 돼 있어서 4·3희생자 유족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딸로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후 “유일한 혈육은 저 뿐인데 아버지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흐느꼈다.

김정희씨(72·애월읍 고성리)의 아버지(김순)는 1948년 19살에 신엄지서로 연행된 후 희생됐다.

김정희씨
김정희씨

어머니 이춘아씨(95)는 김씨를 임신한 상태에서 1948년 10월 시댁인 고성리에 갔다가 군인이 쏜 총에 복부를 맞고 사경을 헤맸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모녀는 김씨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10년 가까이 혼인신고도,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다.

호적이 없어서 김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어렵게 되자, 김씨의 할아버지는 두 아들 사이에 ‘김홍’이라는 가짜 아들을 만들어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시켰다.

‘김홍’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 건 1958년 9월 26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틀 뒤인 9월 28일 김씨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29일에는 김정희씨가 가짜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김홍의 사망신고일은 다음해인 1959년 1월에 이뤄졌다.

오연순씨
오연순씨

김씨는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어머니가 2019년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고, 작년에 김홍과의 혼인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며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까지 아버지 김순의 처로는 오르지 못했다. 지금 법으로는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4·3희생자의 아내로 호적에 오르지 못한 김씨 어머니는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호적상 ‘김홍’의 딸로 살아가고 있는 김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로 인정받는 게 소원이다.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은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눈물을 흘렸다.

김정희씨 처럼 4·3 당시 부모를 잃고 친척이나 가상인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희생자 가족은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보상금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개정 4·3특별법 시행으로 지난 7월부터 4·3희생자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희생자 본인만 가족관계부 정정 신청 대상으로 한정했고, 유족은 제외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지방법원과 법원행정처에 4·3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대상 과 신청권자 확대를 건의했다.

오연순씨(72·성산읍 수산리)의 아버지(오원보)는 광주형무소에 수형된 후 모진 고문과 매질로 1950년 옥사했다. 출생신고도 못하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5촌 삼촌(당숙)의 딸로 호적에 올랐다.

오씨는 잃어버린 핏줄을 찾기 위해 2014년 친자확인 소송을 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가 이모와 고모의 증언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5년이 지난 2019년 7월 법원의 판결로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오씨는 “소송으로 뒤늦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딸로 인정을 받았고 호적(가족관계등록부)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더는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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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2021-11-05 10:51:06
모두의 연세가 70을 넘기셨네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시점이겠습니다.
가슴 아픈 분 없게
조상님 제대로 찾게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