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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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가을이 익어간다. 등성이에 업혀 오다가 억새꽃에 눈 맞춤도 하고 풀벌레 입속에 한 소절 내려놓기도 하며 슬며시 사방에 스미었다. 마당에 짐을 푼 가을은 마음을 앓게 하고 생각들을 깨운다.

단풍은 비바람을 견딘 나무의 유채화다. 생채기가 깊을수록 그 빛깔은 농염하다. 알록달록 치장한 옷차림은 종점을 향한 내면의 소리이고,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충만의 표정일 테다. 같은 수종도 단풍색이 다른 걸 보면 같은 듯 다르게 제 길을 걸었다는 자서가 아니랴.

이별의 서시를 끼적이다 미완으로 툭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우리의 생을 겹쳐 읽게 한다. 이미 세상을 달리한 낙엽들이 끼리끼리 모여 외로움을 터는 듯하다. 심심한 바람이 그네를 태우면 바스락 웃음을 터뜨린다. 훗날 나도 그런 웃음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면이 낮은 우리 집 올레는 무시로 바람과 잡동사니가 난장을 이룬다. 큰길의 낙엽뿐만 아니라 미아가 된 팩과 페트병이며 심지어 담배꽁초까지 몰려든다. 대빗자루로 쓸어 담을 때면 인간이 버린 쓰레기에 은근히 부아가 난다. 아니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이 미워진다.

뒤뜰 구석에 쌓아놓는 낙엽들은 세월에 삭으며 거름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이 떠날 때면 무엇이 남을까. 영혼이 떠난 육체는 사물화될 뿐이다. 삶의 흔적을 묘비나 누군가의 가슴에 새긴들 영원할 순 없다. 그건 지나친 욕심, 결국은 무로 돌아가야 한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내 마음이 변한다. 지구에 발을 디딘 건 축복이었다는 한마디 안고 가려는 내 소망이라니.

부질없다는 말에 결박되면 마당을 서성인다. 자연의 언어는 다양하다. 올망졸망 매달린 단감들은 새들의 성찬이다. 동박새·멧새·직박구리·까치 등이 들락거리며 쪼아먹는다.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다른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게 그들의 불문율이다. 보시하는 감나무의 흐뭇한 미소가 허공으로 번진다.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걸 보면, 변장한 천사를 알아보는 건 아닐까 싶다.

국화야 요즘이 제철이지만, 철 아닌 꽃들이 궁금증을 일으킨다. 사과나무와 배나무에 꽃이 폈다. 과실수의 이모작은 힘들 텐데, 기후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침묵으론 소통이 안 된다고 눈으로 읽으라는 선명한 몸짓, 나는 이쯤에서 문맹이다. 정상이 비정상으로 퇴화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를 깨우치려는 죽비 같은 것이라 어림하면서.

샐비어와 송죽엽은 봄부터 여태 피고 지기를 이어간다. 대단한 열정이다. 주어진 시간은 지금뿐이라고,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비파나무는 겨울에 피어날 몽우리를 달았고, 덩이괭이밥꽃이 바닥에서 응원을 보낸다. 괭이밥이나 덩이괭이밥이란 이름이 흥미롭다. 배탈 난 고양이가 뜯어 먹고 나은 풀이라 해서 ‘고양이 밥’이라 한다니.

메마른 응달에서 자라는 잡초를 볼 때면, 삶은 조건이 아니라 자세란 말이 떠오른다. 짓밟히면서도 꽃을 피워 핑계의 가식을 벗겨낸다. 존재 자체로 존재한다.

자연의 길은 배척이 아니라 수용이다. 다 품는다. 인간만 아옹다옹 종주먹 휘두른다. 인격이 휘발된 소음들이 거리를 메우는 시절이 되었다. 권력에 취한 눈망울들을 경계해야 한다. 기만이 아니라 진실의 깃발을 들어야 하리.

가을의 포옹에 황홀한 사람, 아름다운 심안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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