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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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남편과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빽빽한 지하 공간에 왔다 갔다 연거푸 하며 가까스로 주차하였다. 겨우 뒷정리를 하고 나오니 남편이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여느 때 같으면 먼저 엘리베이터로 올라갔을 터인데 미안한 마음에 손을 잡았다.

남편 손바닥의 도톰한 곳에 손이 맞닿았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인사 대신 남편의 엄지손가락을 비볐다.

빙긋이 웃고 있던 남편이 정말 고맙다. 오랜만에 잡아보네?” 뜻밖에 내 가슴은 찡했다. 무얼 하며 살아왔는지 도리질 친다. 젊은 시절, 어찌하여 이 사람은 나를 선택한 별이 되었는지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다.

, 이제 오니? 어떤 남자 두 분이 여덟 시도 안 되어 너희 집 물어서 가르쳐 주었는데.”

동네 가게 언니 말에 머리끝이 바짝 솟아올랐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선 사람이 앉아 있어 놀랄 수밖에 없다. 세 시간 정도를 한자리에 그냥 앉아 있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아르바이트를 규칙적으로 하는 줄 모르고 다 큰 처녀가 밤늦게 놀다 온 줄 알까 봐 감정처리를 할 수 없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달 되지 않을 때였다. 그동안 남편과 나는 백일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초저녁에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왔다.

사소한 감정으로 헤어지기로 하고 얼마 넘지 않은 때였다. 동생 공부시켜야 할 가장이 된 마당에 무슨 연애냐고 자책하였다.

어떤 일이세요? 미리 연락이라도 하던지. 우리 끝내기로 한 사이 아닌가요?” 남편은 가만히 앉아 있고 시아버지는 친정어머니한테 극구 사정하고 있다. 그때까지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시아버지 처지에선 일찍 퇴근하는 남편의 낌새에 이상함을 느껴 앞장세우며 왔다는 설명이다. 나는 어르신이 무슨 죄일까 싶으니 미안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침 외할머니가 집에 온 지 며칠째 된 때였다. 외할머니는 첫 중매를 마다했던 친정어머니의 예화를 꺼내며 사주단자를 주라며 한 수를 거들었다. 죽을 만큼 사랑을 앞세운 것도 아니고 어른끼리 성사시켜 버린 결혼이다.

결혼 후, 살아간다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위 수술받은 줄도 모르고 결혼한 터라 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여러 가지가 혼란스러웠다. 계획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다. 보따리를 몇 번이나 쌌다가 풀었을까.

시아버지는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정신적인 지주였기에 친정아버지처럼 모시며 살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내 의견을 들어보고 생각을 결정하였다.

4대가 제사 명절을 한곳에서 지내는 장손 며느리가 되어 보니 치러야 하는 일은 좀 많을까. 식구가 많다 보니 생로병사는 동시에 일어나듯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슴에는 묵직한 돌이 두어 개 얹어져야 했다.

내가 다니는 사찰의 주지 스님은 법문 중에 고령이 된 부모님이 계신다면 최고로 행복한 가정이다. 부모 모시기를 부처님 섬기듯 하라. 병들어서 괴로워도 부모 공양이 최고다.’라고 하셨다.

돌이켜본다. 사랑을 지속할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시부모님은 위기 속에서도 끝끝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보이지 않는 돌 그림자는 이미 내 가슴 속에 들어앉았다.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내려놓기를 해도 꺼내어 볼 수 없다.

남편은 밤늦게 막걸리 한잔하다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문자를 보냈다.

고미선 씨, 고마워요. 나의 각시가 되어 주어서.”

남편은 평소에도 애정 표현을 못 하는 무뚝뚝한 남자다. 사십 년이 넘는 결혼생활에 애정이 담뿍 담긴 문자는 온몸을 사르르 녹게 한다.

그때 시아버지와 남편이 어두운 밤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없었으리라.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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