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구리의 신음
것구리의 신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이영운 시인·수필가

이 선생님! 이리와 보세요.”

아니, 왜 그러세요?”

저기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독사 아닌가요?”

박 선생님의 가리키는 곳을 보니 틀림없는 살모사였다. 삼각형 머리에 크지는 않지만 서너 차례 둥굴게 몸을 휘감고 앉아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소리쳐 봐도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살모사 바로 옆에 제법 쓰레기들이 있었으나 떨어진 곳의 쓰레기만 줍고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걸으멍, 도르멍, 주시명(걸으며, 달리며, 주우며의 제주어)’ 플로깅(Jeju Plogging)으로 환경자원지킴이 정화 활동에 참여했다. 플로깅은 2016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된 활동으로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플로카 업(Plocka Upp)’과 영어 단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말한다. 오늘도 22명의 봉사단원들이 조천읍 것구리오름 일원 정화 활동에 나섰다. 것구리 오름은 꾀꼬리오름·원오름·앵악(鶯岳거구리악(巨口里岳)으로도 불리며 고도 430m의 나지막한 오름이다. 제주의 오름은 일반적으로 한라산 쪽이 높고 바다 쪽이 낮은데 이 오름은 높낮이가 거꾸로 돼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것구리 오름 등산 진입로까지 2정도 정화활동을 펴고 이어서 것구리 오름을 오르면서 등산로 정비, 안내 표지 천 바로 걸기, 쓰레기 줍기 활동을 했다. 우리는 매달 오름이나 바다나 환경 취약 지역을 찾아서 정화 활동을 한다.

오늘도 마대와 낫을 들고 쓰레기를 주으며 주변을 정비했다. 가장 많이 수거한 쓰레기는 일회용 플라스틱이었다. 크고 작은 페트병, 빨대, 각종 포장 용기, 비닐 봉투, 물티슈, 종이컵, 플라스틱 커피잔, , 마스크, 먹다 남은 음식물 등 너무도 다양했다. 2시간 동안 모은 쓰레기들을 일반쓰레기, 불연성 쓰레기, 플라스틱류, 병류, 비닐류, ·고철류, 종이류 등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내가 주우면서 가장 많이 허리를 굽힌 것은 담배꽁초였다. 도로 주변과 숲 가까운 길은 담배꽁초로 바닥을 깐 것처럼 뒤덮여 있었다. 수만 개의 꽁초가 오름 여기저기에 버려질 때마다 숲과 나무들은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나의 생명을 깡그리 태워 앗아가려는 그 작은 물체에 소름이 끼쳤을 것인가?

갑자기 2005TV에서 생방송으로 방영되던 양양 낙산사 화재 현장이 떠올랐다. 그해 44일 오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식목일인 이튿날 강풍을 타고 동쪽으로 번져 우리나라 관음보살 신앙의 본향인 낙산사에 옮겨 붙었다. 이날 오후 3시께 사찰 주변 송림에 이른 산불은 서쪽 일주문을 태운 뒤 대웅전을 집어삼켰고, 보타전·원통보전·요사채·홍예문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조선 초기에 만든 1.58m 높이 보물 제497'낙산사 동종'이 소실되고 인근의 호텔 등 건물 252채가 잿더미로 변했다. 화재 원인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 했지만, 지나가는 차에서 버린 담뱃불로 추정하고 있다

낙산사는 여러 차례 가 본 적이 있다. 특히 석양에 노을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해수관음상을 보면 중생을 구제하고 사랑해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주는 자비로운 관음보살의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연꽃 위에 한 손엔 감로수병을 한 손으로는 수인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671년 의상(義湘)이 창건한 천녀 고도의 대 사찰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무책임함을 우리 세대가 범한 것이었다.

제주에는 독립된 소화산체인 오름이 368개 있다. 그리고 많은 곳이 잘 정비eho 있어 모두에게 큰 위로와 건강을 베풀고 있다. 그런데 제주 오름 주변에선 요즘도 크고 작은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제발 오름에 올라 자연의 일부를 가져오지도 말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도 말자. 오름의 가슴을 큼착큼착(조마조마)하게 만들지 말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