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바람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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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계절이 딛고 선 공원 한 모퉁이, 가을햇살에 단풍들다 만 것이 아쉬운 듯 이파리들은 바람 한 점 없는데도 힘에 부쳤는지 맥없이 수직강하 한다.

지난 휴일, 연로하여 언제 먼 길 나설지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다 숙모님을 뵙고 왔다. 반년만 더 살면 1세기를 살고 있는 셈이고, 집안 어른 중 가장 장수하고 있는 분이다. 문을 열자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곱….’ 느릿한 데다 음의 고저 없이 일정하게 읊는 것이 노랫가락인지, 숫자를 세는 것인지 헷갈렸다. 두어 번 불러도 반응이 없자 다가가 살짝 건드리니 그제야 누웠던 몸을 일으킨다. 그 모습이 빠른 움직임을 느리게 바꾸어 재생한 화면인 슬로비디오처럼 보였다. 천천히 몸을 돌려 일어나 앉는데 동작 사이사이로 ‘아이고’하는 말이 순간순간 무게감 없이 튕겨 나와 대기에서 흩어진다.

이쪽 귀에 비해 저쪽이 더 밝은 모양이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자세까지 흐트러지는 바람에 넘어질 것 같아 얼른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아픈 곳은 없는지 인사말을 건네려다 말았다. 그 숱한 세월, 어느 한 날 쉬지 않고 몸을 썼으니 이 정도의 운신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 생각 들어서다. 귀가 어두운 탓에 큰소리로 ‘뭐 하시냐’고 여쭙자 웃는 표정 안으로 잘 맞지 않은 틀니도 헐렁하게 따라 웃었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말할 일도 없고 해서 정신은 온전한지 일삼아 서른 까지 세어 본다.” 고 하셨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의 특징이 그렇듯 큰소리로 대답하는 바람에 벽까지 흔들리는 것 같다.

처음 듣는 그 말에 싱겁게 웃고 말았으나 혼자 오래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싱겁게 시작된 웃음의 끝 맛은 쓰다. 웃는 내 모습에 당신도 웃겼던지 잘 맞지 않아 헐렁한 틀니를 내보이며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이 부조 웃음인지, 당신 행동에 대한 헛웃음인지 아리송하나 웃음은 당신의 외로움처럼 보여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1인가구가 늘고 있다는 통계청 자료가 발표되었다. 지난 2015년 27.2%이던 1인가구는 2020년 말 31.7%로 증가했다. 통계청의 예측보다 1년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고 한다. 65세 이상 고령인 1인 가구는 2015년 122만3천명에서 2020년 166만1천명으로 5년 새 35.8%나 늘었다는 발표다.

1인 가구라는 가구 형태가 개개인 나름의 이유도 있을 테고, 가족에게 폐가 될까 싶은 조심함으로 시작된 일일 수도 있겠다. 노년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네 가지 고통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 한다. 육신은 늙고 병들어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외려 짐이 될까 싶은 생각에 위축 되다보니 외로움의 크기가 더 커짐이리라. 나이 들며 그게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막상 인정하며 산다는 게 쉽지 않을 게다.

인사하고 나오는데 잘 가라며 흔드는 손짓에도 세월의 무게가 보였다. 일삼아 숫자를 세어본다고 하던 말씀이 발그림자 밟으며 따라온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움을 안고 길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한 줄기 소슬바람에 마른 잎들 주차해 둔 차바퀴 사이로 맥없이 뒹군다. 초록이 성성하던 흔적은 간 데 없고 갈바람에 낙엽들, 바람의 꽁무니 쫓느라 힘겹다. 마치 그 어른의 청춘을 대책 없이 끌고 가버린 세월처럼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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