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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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별러 새 블라우스를 사 놓고 한 번 입어보지 못한 채, 두 해 여름이 지났다. 가을옷도 그대로 옷장에 걸린 채 겨울이 될 것 같다. 내년에는 유행이 바뀔지 모른다. 멋 내기만 아니다. 놓치고 사는 게 어디 이뿐이랴. 마스크 덕에 화장기 없이 나가고 옷매무새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닐 만큼 게으름이 눌러붙었다.

지금까지 유행을 따라 산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늘 한 박자 더디고 무디게 사는 편이다. 는적거리며 지나다 보면 그때서야 보이는, 거리의 인파는 이미 새 유행의 물결로 출렁였다. 그뿐 아니라 매사에 숨 가팔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 방식대로 유유자적 사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화려한 치장에 대한 동경이 없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초연하게 살았다고 할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나름 자유로워 진다는 것, 좀 고집스러운 삶은 아니었을까. 점점 무심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돌아보다, 낯두꺼운 삶을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개성인가, 성숙인가, 달관인가. 태생적으로 세상을 읽는 낚시질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늦둥이처럼 센서 작동이 굼뜨다.

이제는 세상을 느긋하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옳다 그르다 시비 걸지 말고 자신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는, 앞으로 가야 할 길임을 깨닫는다.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세상 분위기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뒤늦게 휘청거리다 비탈에 선 나무같이 위태로울 수 있다. 분별없이 욕심을 부려 자신을 닦달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인데. 남은 날을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살고 싶다.

늦가을 햇빛이 넉넉해 느릿느릿 걷다 숲에 들었다. 우람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쪽빛이다. 칼칼한 바람이 성근 머릿속을 헤집어 서늘하다. 아직 불편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맙다. 이곳에 얼마나 더 올 수 있을지. 아무도 알려 줄 수 없는 앞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내 몫이니까.

다투어 몸피를 불리며 초록으로 기세를 확장하던 풀과 나무들이, 이제는 저마다 농익은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독특한 색은 그 나무만의 개성을 드러낸 것이다. 오름 허리가 울긋불긋 찬연하다. 붉거나 노랗고, 갈색이다. 한 해의 노고를 마무리하는 엄숙한 순간이다. 사람이나 자연도 일 년 동안 짊어졌던 고단한 짐을 내려놓을 시기가 가을이다. 그리하여 겨울은 홀가분한 은둔의 계절이 돼야 하리라.

쌀쌀한 날은 구수하고 따뜻한 숭늉까지 마실 수 있는 돌솥밥이 제격이다. 산행길에 점심을 먹으러 종종 들르는 집이다. 뜨끈한 숭늉을 후룩후룩 마시면 속이 따뜻해, 온몸의 세포가 노곤하게 풀어져 기분조차 느긋하고 여유롭다. 구수한 물 한 잔이 주는 심신의 포만감은 밥값 이상의 가성비로 온다.

밥집 귀퉁이 화단에 조락이 깊어졌는데 햇살마저 한풀 꺾였다. 누렇게 시든 백일홍꽃이 바람에 서걱거려 을씨년스럽다. 평소 꽃 욕심이 많다. 내 뜰이 한 평 없는 갈증일 테다. 씨를 받기엔 늦었지만 두 송이 훑어 후후 불어 봤다. 색바랜 꽃잎 속에 몇 알의 씨앗이 손에 들어온다. 이 소중한 씨앗에서 내년에 싹이 몇 포기나 돋아날지. 심을 곳이 없다고 고민할 필요 없다. 가슴 속 뜰에 꽃씨 몇 알 품고 있으면 한겨울이 넉넉할 것 같다. 가슴 텃밭에 심은 꽃으로 꿈을 키우면 행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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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2021-11-23 11:17:31
햇살 넉넉한 숲에 들어 가을을 봅니다.
이제 돌솥밥을 먹으러 가야할까 봅니다~^^
따스하고 넉넉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