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여행한 영국 여성탐험가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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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에 등장하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립 지학협회 회원"이다.

1831년 영국에서 태어난 버드는 어릴 적 건강이 좋지 않아 "바람을 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1854년 처음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했다. 영국으로 돌아와 쓴 책 '미국에 간 영국 여인'(1856)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자신의 여행에 대한 열정과 글쓰기에 대한 재능을 발견한다.

이후 버드는 호주, 하와이, 일본, 인도, 티베트, 페르시아, 쿠르디스탄, 한국, 중국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8권의 책을 펴냈다.

19세기 말 4차례에 걸쳐 11개월간 조선을 여행한 버드는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왕족에서부터 빈민에 이르는 조선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과 금강산, 원산 등지를 여행한 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1898)을 펴냈다.

당시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오랫동안 유럽 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창 역할을 했다.

서울에 대한 버드의 첫인상은 "어느 모로 보나 단조로운 것"이었으며, 지역 수령의 집을 구경하고는 "천박하게 테를 두른 큰 거울과 프랑스 시계는 모든 방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속물 근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외국문물을 맹종하는 천박함이 돈 많은 젊은 멋쟁이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번져 가며 한국의 소박함을 망치고 있었다"고 적었다.

짚신을 신고 금강산에 올라 본 풍경은 "노란색 화강암 봉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회색으로 바뀌었다가 갑자기 차갑고 굳건하고 강인한 푸른빛을 띠고 울창한 숲 위로 솟아오르더니 이윽고 해가 가라앉음에 따라 붉은빛으로 변했다"고 표현했다.

'이사벨라 버드;19세기 여성여행가 세계를 향한 금지된 열정을 품다'(바움 펴냄)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이블린 케이가 버드의 책과 그녀가 남긴 수많은 편지를 토대로 쓴 '탐험가 버드'의 전기다.

비록 버드가 19세기라는 제국주의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의 표현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그는 무거운 삼각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기온과 고도를 정확히 재기 위한 과학적 도구를 사용했으며, 이동 거리와 지명을 자세히 기록하고, 보이는 것과 경험한 것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저자는 당시 동양을 여행하는 다른 탐험가들이 유럽 문명으로 동양의 야만인들을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데 반해, 버드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서양식 사고를 가진 우리들이 마주치는 것들이 미개함이나 윤리의 타락이 아닌,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또 하나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이는 타락한 것이 아니며 비록 불완전하기는 해도 우리가 존중하고 감탄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가지고 있는 것이다."
류제선 옮김. 440쪽. 1만8천원.(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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