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자본주의'시대 민주주의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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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는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월마트는 제품 가격을 크게 떨어뜨려 고객들에게 혜택을 준다. 월마트의 성공으로 투자자들도 이익을 챙긴다.

동시에 월마트의 낮은 급여와 열악한 복지혜택, 공급자들에게도 싼 값에 물건을 대줄 것을 강요하는 행태 때문에 관련자들은 고통받고, 소규모 소매점들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간다.

하버드대 정치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한 '슈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 시대에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소비자ㆍ투자자로서의 권리가 충돌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평균임금 하락을 걱정하면서 자국민의 임금과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중국산 제품에 관심을 갖는 것, 자영업자의 몰락을 한탄하면서 대형 유통점과 인터넷에서 쇼핑을 하는 것,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사는 것도 모두 두 권리의 충돌현상이다.

그는 책 '슈퍼자본주의'(김영사 펴냄)에서 슈퍼자본주의가 정치로 흘러들어가 민주주의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하면서 자본주의가 정치를 침범하는 문턱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한다.

"무생물인 기업에 인격을 부여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를 주지 말자"는 것으로 요약되는 대안은 일견 통념을 뒤집는 것들이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기업에 법인세를 물려서는 안된다", "기업에 애국심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더 나은 이익을 위해서는 생산 기지를 어디로든 옮기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허구이며 결국은 이익증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기업이 인격을 갖는 순간 막대한 자금을 들여 로비스트를 정치권에 투입해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낸다고 경고한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퇴직 의원들의 3% 만 워싱턴의 로비스트가 됐다면 2005년에는 그 비율이 30%로 늘었고, 로비스트들의 봉급은 1995년 월평균 2만달러에서 2005년에는 4만달러가 됐다. 2006년 의회와 백악관 관리 출신 로비스트들이 받는 초봉은 연간 50만 달러 수준이었다.

저자는 기업들이 정치권을 향해 경쟁하는 것은 기업들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슈퍼자본주의 시대 개별기업들은 1960-1970년대 기업이 갖던 영향력을 잃었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로비를 한다.

"슈퍼자본주의는 경제와 정치를 구분하는 그 인위적인 경계에서 멈추지 않았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압력에 처한 현대 기업의 목표는 경쟁력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워싱턴을 비롯한 전세계의 정치 중심지들은 이제 경쟁력을 놓고 싸우는 전장이 됐다. 이곳에서 결정되는 정책들이 특정한 기업이나 산업들에 도움이 되고 경쟁자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205-206쪽)
결론은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매출과 수익 창출이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노력은 현행 규칙 아래에서는 합법적이므로 이를 비난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을 의인화하는 것을 중단하고 철저히 계약의 묶음으로 간주해 법인세를 없애자는 제안은 레스터 서로우 매사추세츠공대(MIT)교수의 아이디어를 따왔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법인세는 기업의 소득세다. 소득세는 사람만 내는 것이다. 법인세를 폐지하는 대신 기업이 주주들을 대신해 벌어들인 모든 소득에 대해 주주들이 개인적으로 세금을 내게하면 기업의 실체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주주들의 결사체라는 기업의 본래 속성에도 잘 맞는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세금을 내기 때문에 정치과정에 당연히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도 뿌리 뽑히게 된다. 민주주의의 권리나 의무는 오직 사람에게만 속하기 때문이다.

형선호 옮김. 364쪽. 1만7천원.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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