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다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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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흰 상의에 검정색 바지를 착용해 주세요.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나오셔야겠습니다.” 같은 내용을 어제와 오늘 연달아 보내왔다. 참 지극하다는 생각이다. 대개는 한 번만 보내고 책임을 다했다 말할 수도 있는데 진한 호소력이 느껴진다.

토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아파트에서 아나바다 장터가 열리는 날이다. 담당자에게 메시지를 연달아 받고 나니 꼭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행사 시간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갔다. 도착하니 벌써 주방 기구에서부터 생활 잡화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릇이나 장난감들은 사용했던 흔적이 좀 있긴 하지만 재활용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의류도 마찬가지다. 사실 요즘은 옷이 헐어서 못 입기보다는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칠레 북부에는 급격히 늘어난 의류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가고 있다는 소식이 다. 유럽과 아시아 미국에서 소비된 중고 의류가 매년 수천 톤씩 칠레로 들어간다. 일부는 중고 상인에게 되팔리지만 절반 이상이 사막에 버려진다고 한다. 화학 처리된 의류가 생분해되는 시간만 해도 수백 년이 걸리는데 그로 인한 환경오염 또한 얼마나 클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성장하는 기업 뒤엔 적극적인 소비자가 있다. 끊임없이 옷을 사 입는 ‘패스트 패션 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만큼 빠른 유행으로 빠른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 쇼핑몰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쉽게 구매하는 반면 쉽게 버려지는 것이 문제다. 재활용도 해 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쌓여 가는 의류 폐기물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란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은 패션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하지만 지갑을 여는 횟수만큼 환경에 미치는 오염 수치가 달라진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터진 바지를 기워주셨던 어머니의 옛 모습이 그리워진다. 조그만 헝겊 조각까지도 반짇고리에 정성스레 담아 놓았다가 가족들의 옷이 헐면 꼼꼼히 수선해 주셨던 어머니.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처럼 옷을 대하는 자세 또한 지극했다.

행사장에는 주로 먹거리 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한때 주방을 빛내던 예쁜 법랑 용기들까지 나와 있었지만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그냥 일어서곤 한다. 요즘은 집에서 손님 접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련 없이 나오게 된 것들, 새 주인은 누구일까 눈만 깜빡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년이라는 공백을 두고 다시 열린 아나바다 장터. 위드 코로나를 시행한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아 조심스러우면서도 소박하게 진행했다. 수익금의 일부는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예정이란다.

아나바다 운동은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 됐다. 집집마다 금이란 금은 모두 꺼내 힘을 보탰던 금 모으기 운동도 그렇고,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은 재활용하며 생활 속 절약을 실천했던 운동이다.

칠레의 한 사막이 의류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지금, 진정한 아나바다 정신이 필요한 때다. 내가 구매하려는 물건이 지금 꼭 필요한 것인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웬만하면 아끼고 나누고 다시 쓰려는 마음이 가득할 때 우리의 미래가 더 풍요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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