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봉 산책로와 애기 업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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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돈,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애월문학회장

가을인가 싶더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합니다. 갑자기 닥쳐온 추위 때문인지 오늘따라 더 춥게만 느껴집니다. 산간에는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오랜만에 사라봉을 올랐습니다. 몸치장했던 것들은 마치 제몫을 다했다는 듯 자취를 감춰 휑한 바람만이 온몸을 파고듭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인 셈이지요.

꼬불꼬불한 계단을 올라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문득 서쪽을 바라보니 제주 시내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고 바다는 거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사라봉은 제주시내와 가까워 틈만 나면 운동 삼아 사진을 찍으러 오르곤 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발길이 뜸했습니다. 게으른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라봉을 내려와 별도봉으로 향했습니다. 산책로를 걷다 만난 이름 모를 풀잎들이 고개를 내민 모습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추운 날씨에도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별도봉 산책길을 계속 걷다보면 눈앞에 해안절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자주 왔었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빠지기도 했었고, 시집을 읽으며 작품구상도 했었죠.

그 절경 동쪽에는 4·3 당시 잃어버린 곤을동 마을터가 있습니다. 4·3이 일어난 이듬해인 1949년 1월 갑자기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많은 주민의 희생당하고 평화로웠던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진 비극의 현장입니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별도봉 북녘기슭에 ‘애기 업은 돌’이 보입니다. 이 돌 바로 아래쪽에는 자살바위가 있습니다. 애기 업은 돌과 자살바위.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애기 업은 돌 앞에는 방파제가 만들어져 있어 예전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애기 업은 돌은 마치 애기를 업고 바다를 향해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바위는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의 전설이 내려옵니다.

남편은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파손되고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여인은 아기를 업고 여기 나와 있다가 지쳐서 돌로 굳어졌다는 내용이죠. 또 이 돌 아래에는 고래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해식 동굴인 고래굴이 있습니다.

애기 업은 돌을 삼양동 쪽에서 바라보면 여인이 아기를 업고 산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어서 예부터 삼양 여인들은 멀리 시집을 가거나 화북에 시집을 오면 이혼율이 많고 시집살이가 잘되지 않는다고 하여 어느 날 밤에 삼양의 장정들이 이 애기 업은 돌을 허물려고 했지만 끝내 허물지 못했다고 하는 전설도 내려옵니다.

이러한 연유인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화북과 삼양은 이웃마을이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는 풍습도 있었다고 합니다.

애기 업은 돌과 자살바위 밑에는 곰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는 마치 아기 곰이 눈을 지긋하게 감은 듯 귀여운 모습으로 누워있습니다. 그 앞에는 하트모양의 바위가 있습니다.

산책길에서 보면 이 바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새들의 배설물로 뒤덮여 하얀색을 이루고 있습니다. 애기 업은 돌에서 내려와 뒤를 돌아보니 우뚝 솟은 바위들이 운치를 더하네요.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햇빛이 얼비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내년에는 희망의 빛이 훤히 비춰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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