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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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엎더지멘 코댈곳인디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사치스럽다며 걷기도 잘 걸었져. 반세기 전에 제주의 시골 어르신들이 일상이었다.

먼먼 한 길을 그것도 빈몸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꽤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발이 몽글게걸었다.

지금처럼 도시집중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때니까. 사는 곳이 바로 본적지로 일가 친족들도 거의 같은 곳에 살고 있었으니, 좀 나들이 한다면 이웃마을에 갈 정도니 걸어서 가면 그만이었다.

어린 학생들도 먼 거리 7~8통학거리를 걸어서 다녔지만, 어른들은 원만한 거리면 시외버스가 다니고 있어도 찻값을 아끼느라고 걸어서 다녔다.

그래서일까. 낮선 사람이 마을을 지나다가 길을 물을 때면 멀다는 표현으로 아이고 그디꼬지 가젱 호멘 한참 가사 홀거우다하는 식으로 가르쳐 주곤 했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차를 이용하려고 했던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은 멀쩡한 존갱이에 걷젱덜을 아니 허영 그자 걸핏하멘 차만 탕 뎅기젱 호니.’ 나무랐지만, 젊은이들은 젊음대로 몇 푼 아니 되는 그 차비 애끼젱 생고생 호명 걸엉뎅길 건 뭐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지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느림의 미학에 대해 점점 걷는 일이 적어지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한정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보는 세상과 직접 걸어 다니며 만나는 세상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온전한 몸짓이니,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걸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침저녁으로 걷기 운동을 하는 분들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일상회복이 되면 집근처 공원길을 비롯해서, 시골길 따라, 산길 따라, 골짜기 따라, 시냇물 따라,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길 따라, 둘레길 따라, 낙엽 진 길 따라, 순례길 따라, 절로 가는 길 따라 . 걷고자 하는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려는 사람들이 북적거릴 것이다.

보통 걸음으로 만보를 걷는 데는 약 2시간가량 소요된다고 하니, 이 절반만이라도, 함께 걷기도 하고, 따로 따로 걷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노승의 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각종 행사에서 연출하는 걷기 어플 인증샷을 만들어 가면서 걸어가면 될 것이다.

좋은 세상 만났져. ‘시내에서 차 탕 뎅길 생각이사 호여낫수까만. 좋은 세상 되어 가난 이젠 호강덜 호는 셈입주한 노인의 반세기 전에 고되었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나, 부지런히 걸어가는 일상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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