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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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수필가

정원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저들은 싱그러웠던 한때의 미련을 버리고 영면에 들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이러스 사태로 집안에만 있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졌다.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생각은 과거로만 향한다.

고향이란 단어는 언제나 어머니 품을 연상케 한다. 누구나 고향을 떠올리면 애잔한 추억 몇 가지 없으랴만 특히 달이 밝은 날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웃과 들락거리며 허물없이 지내던 어릴 적 풍경이다. 과거 속에 묻혀 꿈속에서나 느껴 봄직한 일이지 싶다.

당시 우리 고향에서는 결혼식이 있으면 으레 잔칫집 마당에서 춤을 추며 노는 풍습이 있었다. 더구나 추석날 밤이 되면 누구누구네 집에서 놀 것이라고 암암리에 소문을 내고 입을 통해 전달된다.

저녁이 되면 으레 그 집 마당으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허벅과 쇠젓가락이 노랫가락 추임새 악기가 된다. 허벅 장단을 내로라하게 연주하는 단골 전문이가 당연 메인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장단칠 준비를 한다.

마당에 모여들어 둥그렇게 둘러선 구경꾼들의 시선은 모두 마당 한가운데로 쏠려있다. 사전에 예정된 것도 아니고 약속한 바도 없다. 하지만 일사불란하다.

누구 먼저랄 것 없이 관중들 틈 사이에서 어느 한 사람이 목청을 뽑아 구성진 아리랑 노랫가락을 시작한다. 그러면 홀린 듯이 노래에 맞춰 한 사람이 나와서 아리랑 춤을 추는가 하면 뒤이어 젊은이 어르신 새댁까지 한 사람씩 나와 어울리면서 끼를 뽐낸다.

수줍음이 많던 옆집 새아씨도 그날만큼은 용기를 내어 마당 무대로 나와 한데 어울리며 춤사위를 펼친다. 숨어있던 재능은 동네에 소문이 나서 인기가 급부상하는 보너스도 얻게 된다. 아리랑, 노들강변 등 구성진 노랫가락들은 더욱 분위기를 살려 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도라지, 양산도 등 노래가 끝나는가 하면 곧이어 다음 타자가 연이어 노랫가락을 뽑는다. 허벅 장단은 그럴싸하게 젓가락과 손바닥을 이용하여 노래에 박자를 맞추며 흥을 돋운다. 노래와 춤이 계속 나오며 분위기는 절정을 이룬다.

격려의 박수와 감동의 박수가 나오는가 하면 장난기 있는 총각이 휘파람으로 환호를 보내며 한껏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계수나무가 선명한 달밤, 하얗게 내려 비추는 달빛 아래서 펼쳐지는 그 순간만은 신선 놀이가 따로 없었지 싶다.

밤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놀이는 점차 진정되어 자연스레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각자 집으로 향한다. 돌아가면서 주고받는 말들이 정겹다. 오늘은 누가 춤을 잘 추었고 누가 노래를 참 잘하더라며 흐뭇한 표정들이다. 여운을 계속 붙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 앞에서 헤어지기까지 이야깃거리는 무르익고 평화롭다.

농사일을 마치고 한가위를 맞아 정겨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이웃 간에 적이 없고 순수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즐거움을 나누며 슬기롭게 세상을 살아낸 민족이다. 노랫말도 예사롭지 않다. 아리랑 노래가 한 남녀 간의 스캔들 정도로 불러온 것이 아니고 깊은 차원의 의미가 내포된 노랫말이라고 하니 되새겨볼 만하다.

아리랑을 풀이하면(나 아 다스릴 리 즐거울 랑) 자신을 다스려서 깨달음을 얻으면 영혼이 즐겁고, 다스림을 포기하여 되는대로 살면 십리(완성 깨달음)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영혼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도에 타락된다.’의 뜻이라 하니 얼마나 고귀한 노래인가. 이러한 노래를 모두가 모여서 함께 부르고 즐겼으니 깨달은 유전자를 지닌 우리 임을 자부해야겠지 싶다. 하루속히 코로나에서 해방되어 이웃과 허물없이 지낼 날은 언제가 될지.

아리랑 가락이 아련히 귓가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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